등록 : 2005.08.31 19:53
수정 : 2005.08.31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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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휘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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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나에겐 짜릿한 경험이 있다. 영화관에서 영화를 보고 장내에 불이 환하게 들어오면, 바로 그때부터 생기는 착시 때문이다. 첫 기억은 고 1때 명보극장에서 본 <사관과 신사>. 크레딧이 오르고 불이 켜지자, 객석 맨 앞쪽에서 하얀 제복의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떼지어 일어서는 게 아닌가. 그들은 영화에서 막 뛰쳐나온 주인공들이었다. 너무 눈부셔서 마지막 하얀 제복이 출구 너머로 없어질 때까지 나는 의자에 파묻혀 있었다.
스무 살에 <미션>을 본 명동 중앙극장. 장내에 불이 켜지자 저쪽 객석에서 천천히 솟구치는 검정색의 정갈한 옷차림이 클로즈업 되어 다가왔다. 신부님 한분이 조용히 일어나서 내 옆 통로로 걸어갔다. 순간 원주민 과라니족과 함께 성가를 부르며 죽음의 행진을 시작한 가브리엘 신부를 직접 곁에서 보고 있었다. 나도 모르겠다. 나는 그들을 향해 총과 대포를 겨눈 포르투칼 병사가 된 것 같아 그냥 눈물이 나왔다.
서른 되던 해 동네 동시극장에서 본 <게임의 법칙>. 시골 청년이 깡패의 짧은 생을 살다 장밋빛 꿈에 부푼 순간 믿었던 조직의 손에 죽는다는 허망한 줄거리다. 실내에 불이 밝자, 글쎄 나와 두 명의 사내가 달랑 전부였다. 스포츠 머리에 곤색 양복의 그들은 조직폭력배가 분명했다. 그때 형님이 동생에게 “괜찮아, 영화잖아.” 라고 말하는 쉰 목소리가 똑똑히 들렸다. 괜히 짠해서 같이 소주라도 마시고 싶었다.
3년 전 신촌 녹색극장에서 ‘동숭’을 볼 때도 신기하게 객석의 노스님 두 분을 보았다. 영화 속 동자승과 젊은 스님의 사춘기를 보내고 노승이 되어 그 자리에 오신 거다 싶어 나는 두 스님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2년 전 광화문 씨네큐브에서 <선택>을 보았을 때도 그랬다. 영화가 끝나고 듬성듬성 있던 관객 속에서 남루한 차림의 마른 노인이 백발임을 확인했을 때, 나는 미전향 장기수 할아버지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렇게 스크린 주인공이 그 의복과 이미지로 티를 내면서 내 앞에 실존으로 현현하는 착시 때문에 나는 요즘에도 내 감성이 통통 살아 숨쉬는 줄 알고 영화관을 찾아다녔다. 그런데, 최근, <친절한 금자씨>를 보고서, 객석 어디서도, 금자씨의 서늘한 미소와 넋 나간 눈빛을, 보지 못한 거다. <웰 컴 투 동막골>을 보고서, 아무리 두리번거려도, 동막골의 착한 사람들을, 찾지 못한 거다. 짜릿함은 끝나고 심란함이 번졌다.
큰 죄 지은 자는 웃는데 작은 잘못으로 끝없이 속죄하고 타인의 십자가까지 등지고야 겨우 숨 돌리는 이 세상의 모든 연약한 금자씨. 돈의 논리로 법 모르고 살아갈 가난한 사람들의 이웃 공동체를 쳐부술 때마다 악 한번 못쓰고 뿔뿔이 쫓겨나면서도 남 탓할줄 모르는 이 시대의 동막골 아줌마 아저씨. 오늘도 포장마차에 앉아 있고 지하철에 실려 가고 달빛 골목길에 들어설 텐데, 나는 보여주는 것 말고는 못 보는 거다.
촌스런 선글라스와 철 지난 물방울 원피스를 입지 않은 금자씨를, 1950년대 강원도 농민 패션을 벗은 동막골 그들을, 마음으로 알아보는 눈 되찾을 방법. 아시는 분 계시면 꼭 알려주시길 바란다. 금자씨를 300만명이 넘게 봤다는데, 동막골 사람들을 최소 700만명이 볼 거라는데, 나는 오늘 이 세상에서 그들을 모르고 산다.
김종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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