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31 21:31
수정 : 2005.08.31 21:31
유레카
“시냇가 오막살이 한가히 살매/ 달 밝고 바람 맑아 흥겹구나/ 손이라곤 오는 이 없고/ 산새들만 지저귀는데/ 대숲 아래 상 옮겨 놓고/ 누워서 글을 읽네.” 야은 길재의 노래다. 소박함과 풍류가 묻어나온다. 소크라테스는 “내 집이 비록 작으나마 진실한 친구로 채울 수 있다면 만족한다”고 했다. 이들에게 집이 크고 작음은 의미가 없다.
그러나 도가 높은 이들의 얘기이고, 범인이나 소인은 집에 대한 욕망을 떨치기 어렵다. 집 크기는 권력과 부의 상징으로 치부되기도 했다. 조선시대 <경국대전>은 신분과 품계에 따라 국법으로 집 크기를 제한했는데, 대군은 60칸 이내, 2품 이상 벼슬은 40칸 이내로 했다. 그럼에도 99칸으로 불리는 대궐 같은 집이 여럿 지어졌는데, 법이 사문화한 탓인지 편법이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권문세가들의 큰 집에 대한 욕심을 읽게 한다.
집을 탐하는 세태를 나무란 선현들의 글도 많다. 그 중 조선 중종시대 청렴한 관리였던 사재 김정국은 <사재척언>에서 이런 글을 남겼다. “거처가 사치하고 참람한 자는 잇따라 망하지 않은 자가 없고, 나지막한 집에 나쁜 의복으로 자신을 봉양하는 데 검소한 자는 마침내 명망과 지위를 누린다. 종실 고흥수가 말하기를 ‘들으니 큰 집은 ‘옥’이라 하고, 작은 집은 ‘사’라 한다. 옥()자는 시체()가 이른다()는 것이고, 사()자는 사람()이 길()하다는 것이다. 큰 집을 가진 자는 화를 당하고, 작은 집을 가진 자는 복받는 것이 괴이할 것 없다’고 했다. 이 말이 글자를 풀이하는 참설이 될 만하니 이치가 없는 것이 아니다.”
요즘엔 큰 집도 모자라 집을 여럿 사들인 뒤, 집 없는 사람들이 어렵게 모은 돈까지 긁어들이려 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남이야 어찌됐건 축재만 하면 된다는 건데, 자본주의 병리 현상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듯해 씁쓸하다.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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