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8.31 21:31
수정 : 2005.08.31 2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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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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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효순칼럼
일본이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이 되기 위해 인도·독일·브라질 등 지역의 대국들과 손을 잡고 추진했던 유엔 개편 구상이 사실상 좌절됐다. 일본 외무성이 9월 유엔 총회에서 결판을 내기 위해 오랫동안 주도면밀하게 벌여온 작업이 물거품이 되고 있다. 일본이 염원을 이루지 못하게 된 표면적 이유는 유엔의 최대 표밭인 아프리카 나라들의 합의를 이끌어내지 못했고 최대의 후원자로 기대했던 미국이 반대로 돌았기 때문이다. 마치무라 노부타카 외상을 비롯한 외무성 간부들은 아프리카 나라들의 각종 모임을 열심히 찾아다니며 ‘원조 카드’를 써댔지만, 끝내 이견을 해소시키지는 못했다.
일본이 국가적 목표 달성을 훼방한 주범으로 꼽는 나라는 중국이다. 일본 외교관들이 어떤 나라들을 상대로 로비를 해 지지 자세를 이끌어내면, 중국이 역로비를 벌여 반대 또는 중립 쪽으로 바꿔 놓는 일이 수없이 되풀이됐다는 것이다. 국제무대에서 위상이 날로 뻗어나가고 있는 중국이 일본을 철저히 견제한 셈이다. 하지만 이를 두고 단순히 중-일 사이의 ‘총성 없는’ 패권 싸움의 결과로만 설명하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다. 중국이 아시아 아프리카 등지의 나라들을 상대로 반대공작을 끈질기게 펼쳤다고 해도, 명분이 약하면 로비가 쉽게 먹힐 리가 없을 것이다.
일본이 인도 독일 브라질과 함께 상임이사국 6개국, 비상임이사국 4개국을 늘리고 새 상임이사국의 거부권을 15년 동결하는 이른바 ‘그룹4(G4) 안보리 개편결의안’을 유엔 사무국에 제출한 것은 지난 7월 초순이다. 이 개편안의 공동 제안국은 이해당사자 네 나라의 포섭 노력에도 불구하고 세를 늘리지 못하고 현재 총수가 32개국에 머물러 있다. 이 가운데 아시아·태평양권 나라는 일본과 인도를 빼면 모두 10개국이다. 국명을 열거하면 아프가니스탄·부탄·피지·마샬·몰디브·나우루·팔라우·솔로몬·투발루·바누아투다. 이들에게 차별적 표현이 될 수도 있겠지만, 비중이 있는 나라들이 아니다. 전란으로 황폐했거나 외딴 나라, 섬나라가 대부분이다.
아시아 쪽과 달리 유럽 쪽의 공동 제안국을 보면 프랑스·덴마크·벨기에·포르투갈·그리스·체코·폴란드 등 낯익은 이름들이 나온다. 아시아와 유럽 쪽 면면의 차이는 무엇을 뜻하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일본과 독일이 각기 지역의 대표자로서 이웃나라들을 끌어당길 수 있는 능력과 포용력의 격차를 드러낸 것이다. 일본은 상임이사국 진출에 대한 한국과 중국의 반대에 직면하고도 크게 놀라는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반일정책’을 무기로 먹고 사는 나라의 의례적 행동이니 새삼 신경쓸 것도 없고, 대외원조 증액을 바라는 여타 아시아 나라와 아프리카 나라들의 지지를 긁어모으면 걸림돌을 넘어설 수 있다는 계산을 했다.
무엇이 일본의 셈법을 어긋나게 했을까? 아시아의 대표 자리를 노리면서 아시아를 무시하는 자가당착적 태도가 자신의 발등을 찍은 셈이다. 침략전쟁 미화 등 극우적 사고를 하는 정치인들이 우쭐댈수록 일본이라는 나라의 품격은 떨어지고 아시아인들의 신뢰도 사라져 간다. 그렇지만 상생 협력의 길이 닫힌 것은 아니다. 일본의 시민사회운동은 중학교용 역사·공민 교과서의 채택을 둘러싼 싸움에서 4년 전에 이어 우익의 음모를 정면으로 저지하는 놀라운 저력을 보여주었다. 나라 사이 이해 다툼을 넘어선 양식있는 시민운동의 연대에서 희망을 볼 수 있다. 한국의 시민운동은 이런 과제에 충분히 준비돼 있는지 자문해볼 필요가 있다.
김효순 편집인
hyoski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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