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셀리그 해리슨. 미국 국제정책센터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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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왜 북한은 에너지 프로그램의 핵심 부분으로 경수로를 그렇게 열망하는가. 남한과 일본이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보는 것은 피상적이다. 평양도 서울과 도쿄처럼 수급을 예측하기 어려운 데다 점점 더 값비싸지는 석유에 대한 의존을 줄이고 싶어한다. 그러나 또 다른 좀더 기본적인 이유가 있다. 북한은 방대한 우라늄 광석 매장량을 갖고 있다. 이 광석들은 경수로 연료로 사용되는 저농축우라늄(LEU)으로 전환될 수 있다. 북한은 남한이나 일본과처럼 미국이나 다른 나라로부터 저농축 우라늄을 수입하지 않고 국내 우라늄 광석을 활용해 에너지 독립을 최대한 달성하고 싶어한다. 김계관 외무상 부상은 8월 13일 시엔엔과의 인터뷰에서 간접적으로 이러한 우라늄 매장량을 내비친 바 있다. 그는 “우리는 여기에 큰 잠재력을 갖고 있다”며 “우리의 자원과 우리나라의 경제상황에 비춰 우리는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을 추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 부상은 북한이 무기급 고농축우라늄(HEU)을 위한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미국의 주장을 언급하며, 미국에 이를 입증할 증거나 정보를 제시할 것을 요구했다. 그는 “우리가 분명히 밝혀야 할 필요가 있는 어떤 종류의 증거라도 있다면 우리는 그렇게 할 준비가 충분히 돼 있다”고 말했다. 이 말이 의미하는 것은 북한이 저농축우라늄을 만드는 방법을 알기 위한 실험실 수준의 프로그램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또 이 시설을 무기급 고농축우라늄 프로그램에 대한 미국의 의혹을 완화시키기 위해 미국 전문가들에게 보여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는 지난 4월 평양을 방문해서 북한이 우라늄 농축을 연구하는 “실험실”을 갖고 있을 뿐 그 이상은 없다는 말을 들었다. 미국 정보 관리는 김계관의 8월 13일 언급이 2002년 11월 19일 북한이 무기급 프로그램을 추진한다는 주장을 미국중앙정보국(CIA)으로 하여금 할 수 있도록 만든 증거의 수준과 종류를 알아내려는 노력일 뿐이라고 의심했다. 그러나 나는 북한이 무기급 프로그램을 갖고 있지 않다는 남한 국가정보원의 평가가 옳다고 믿는다. 고영구 국정원장은 2월 24일 국회 정보위에서 북한이 “아직 무기급 프로그램에 필수적인 장비와 부품들을 수입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국정원이 옳다는 나의 믿음은 미국 에너지부와 국무부의 관리들에게 기술적 조언을 해온 고위급 자문위원 송요택과의 최근 인터뷰에 의해 뒷받침됐다. 이제 은퇴한 그는 1994년 제네바 협정에 따른 사찰 때문에 1995년부터 1997년까지 평양과 영변을 17차례 방문한 사람이다. 1996년 7월 12일 방문했을 때 송요택은 당시 미국 사찰팀을 상대하는 북한의 협상팀 대표였던 영변 방사화학실험실 리상근 실장과 함께 평양에서 영변까지 승용차로 이동했다. 이 실험실은 그 때부터 플루토늄 재처리에 이용돼왔다. 그는 송요택에게 북한이 “3~4%” 수준의 저농축우라늄을 만들어 제네바협약에 따라 건설되는 원자로 두 기의 연로로 쓸 계획이라고 말했다. 왜냐하면 북한이 외부 공급자에 의존할 여유가 없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리 실장은 남한이 새 원자로에 처음 장전할 연료를 제공하는 책임을 질 것이라며 “그렇지만 남한과의 관계가 악화될 경우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우리는 미국이나 러시아에서 연료를 확보해야 하지만 그것은 가능하지 않거나 불확실할 수 있기 때문에 우리 스스로 연료를 공급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나는 1995년 12월 15일 북한과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사이에 맺어진 협약을 검토해, 내용이 그 책임자의 말과 일치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두 원자로의 ‘첫’ 연료장전은 케도에 의해 공급된 연료로 이뤄지도록 돼 있다. 그러나 그 이후 미래의 연료계약은 북한이 선호하는 공급자(DPRK-preferred supplier)와 이뤄지도록 케도와 북한이 합의했다. 케도는 의심의 여지없이 이 모호한 구절이 외국인 공급자를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했으나, 평양은 연료 자급을 희망한 것이다. 1994년 핵동결 합의에서 국제원자력기구(IAEA)는 첫 경수로의 상당부분이 완성될 때까지 신고되지 않은 핵시설을 찾거나 모니터할 권리가 없다. 북한은 케도가 원자로 건설을 완료할 의무를 수행할 때까지 저농축우라늄 시설을 신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네이벌 워 대학의 전략연구 책임자 조너선 폴락은 <네이벌 워 대학 논평> 2003년 여름호에서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했다. 그는 “핵연료를 장기적 관점에서 외부의 공급자에 의존하지 않으려는 북한의 명백한 태도를 가정하면” 북한은 스스로 그런 능력을 찾아왔을 것이라고 썼다. 저농축우라늄 시설은 국제 비확산 규범을 위반하지 않을 것이다. 북한이 비핵화 협약의 일환으로 비확산조약(NPT)에 복귀하면, 저농축우라늄 시설이 국제원자력기구의 세이프가드 조항에 열려있는 한 북한은 저농축우라늄 시설의 보유가 허용될 것이다. 확실히 부시 행정부는 북한과 이란을 신뢰하지 않고 있어 자신의 세계관에 입각해 선택적으로 비확산조약을 적용하려 하고 있다. 그러나 남한은 올바르게도 최우선순위로 놓고 있는 남·북 화해와 궁극적인 재통일에 조응하는 좀더 공평하고 원칙적인 자세를 채택하고 있다. 정동영 통일부장관이 “북한은 핵 에너지를 농업과 의료, 전력 생산을 위해 평화적으로 사용할 일반적 권리를 갖고 있다. 이 점에서 우리의 견해는 워싱턴과 다르다”고 말한 것은 용기있는 행동이었다. 이는 핵 문제에 대해 오래 전에 이뤄졌여야 할 미국정책으로부터의 독립 선언이었다. 송민순 외교부 차관보가 또다시 미국의 노선에서 이탈해, 만약 북한이 핵 프로그램을 버린다면 “우리가 다른 나라와의 이견을 조정해 북한이 주권국가로서 평화적 핵 프로그램을 추진할 수 있는 길을 닦겠다”고 말한 것은 더욱 중요하다. 나는 통일부 장관과 외교부 차관보가 앞으로 몇 주, 몇달 동안 미국의 압력에 맞서 자신의 견해를 지켜내기를 희망한다. 북한의 우라늄 매장량이 얼마나 되는가는 논란의 여지가 있다. 전직 미국 에너지부 자문위원인 로버트 알바레스는 북한의 우라늄 매장량이 2600만 톤이라고 평가했다(<원자 과학자의 회보> 2003년 7월호). 즉각 이용할 수 있는 매장량이 이미 알려진 순천, 구송, 평산, 운기, 박천 등 5곳의 광산에 450만 톤이라는 평가도 있다. 북한 우라늄 광산을 방문했던 러시아 전문가는 노틸러스 연구소의 피터 헤이즈에게 북한이 1년에 천연 우라늄 2천 톤까지 캐내 가공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고 말했다. 이는 대략 미국의연간 우라늄 생산 수준에 해당한다.러시아가 북한의 경수로 건설에 흥미를 보이고 있다는 <이타르 타스>의 8월1일 보도는 의미심장하다. 북한은 제네바 협약에 따라 경수로 건설을 위해 남한, 일본의 자금지원을 협상하기 보다는 러시아의 도움을 선호했다고 한다. 내가 1994년 6월 7일 북한 외무성의 강석주 제1부상에게 핵동결 개념을 처음 내놓았을 때 그는 “미국이 이미 러시아에게 주고 있는 지원의 일정 부분을 떼어내 러시아에서 우리에게 경수로를 사주는” 다자간 협정을 제안했다. 그는 북한 기술자들은 20년 이상 러시아 기술자들과 함께 일한 경험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모스크바가 애초 북한을 위한 경수로 프로젝트를 만들었으나 1989년 고르바초프가 이를 취소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나는 미국과 러시아 사이에 여전히 긴장관계가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원자로를 제공받을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로버트 갈루치는 남한이 북한의 원자로 건설 비용을 대는 데 관심이 있다는 점을 깨달았다. 결국 그 원자로는 통일 한국의 것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논리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타당하다. 부시 행정부가 어떤 문제점을 제기하던 남한의 목표는 제네바 합의에 의해 금호 지구에 이미 건설된 기반시설 위에 원자로를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되살리는 것이어야 한다. 샐리그 헤리슨 미국제정책 센터 선임연구원 번역 박병수 기자 su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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