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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1 18:07 수정 : 2005.09.01 18:14

김갑수 문화평론가

세상읽기

지지하는 인물을 계속 지지하기가 참으로 난감하고 고통스러운 시기가 있다. 일평생 디제이(DJ) 지지자로 살아온 내게도 그런 경우가 꽤 여러 번 있었다. 20억 플러스 알파 때, 정계복귀 때, 홍삼 스캔들 때, 그럴 때마다 멀리 갈 것도 없이 ‘전형적인 평안도 출신’인 부친과 장인의 거센 타박이 이어졌다. “그러게 네 놈이 뭘 알아!” 하는 꾸짖음에 꿀 먹은 벙어리가 되어야 했다. 하지만 지지 의사가 바뀌지는 않았다. 허물의 크기보다는 그가 추구하는 가치, 그가 움켜쥔 대의가 훨씬 크고 소중해 보여서였다.

대선 때 노무현 후보에 대한 지지는 자동적이었다. DJ의 뒤를 잇는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한데 집권 후엔 비판이고 문제제기고 어떻게 해볼 겨를도 없이 마음으로 감싸 안느라 급급해야 했다. 반대세력이 택한 전략 즉, 권력을 인격화하여 언행을 꼬투리 잡아 멸시, 조롱의 방식으로 타격을 입히는 것에 대한 분노를 참을 수 없어서였다. 자국의 대통령을 시정잡배를 거론할 때나 사용하는 어법인 ‘노’라고 대문짝만하게 활자화한다. 이런 일은 2년 반째 하루도 거르지 않고 계속되고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시점, 연정제안이며 통치권 이양의사가 거론되는 상황 앞에서는 정말이지 뭐가 뭔지 모를 혼란과 어리둥절함에 갈피를 잡을 수 없다. 대붕의 깊은 뜻일까, 소위 말해 스탠스를 잃은 것일까, 혹은 자신감을 상실한 단순한 동기는 아닐까. 혼란스러울 때는 현실 국면을 떠나 역사적 시야로 보는 편이 낫다.

지금껏 우리는 성장의 20년, 민주화라고 지칭되는 분배의 10여년을 살아왔다. 그런데 얼핏 머리로는 기억하고 있지만 심정적으로는 까맣게 잊은 듯이 지내는 사실이 있다. 고도성장이든 민주화 과정이든 모두가 끔찍할 정도로 시끄럽고 고통스럽게 달성되어 왔다는 점이다. 그걸 재론해 무엇하랴만 이상하게도 현정권에 적대적인 사람들은 그 혹독하게 어두웠던 지난날의 고통을 죄다 잊은 듯이 보인다. 어쨌든 체험적인 진실이 말한다. 국가가 한 단계 앞으로 나아가는 데에는 엄청나게 혹독한 시련이 가로놓여 전 사회가 요동친다는 것을.

지금 당면한 국가과제는 무엇일까. 더 많은 성장, 더 많은 민주화일까. 나는 그렇지 않다고 믿기 때문에 극우파들이나 현행 노조세력들에게 지지와 동의를 보낼 수가 없다. 생각건대 지금 가장 절실한 과제는 타협과 관용이 지배하는 합리적인 사회를 건설하는 일이다. 가장 어려운 단계인지도 모른다. 타도가 아닌 타협으로 이익을 공유해야 하고, 내 반대편측의 권익을 인정하는 일. 하지만 지금 타협과 관용을 말하는 것은 그만큼 비타협과 불관용이 우리 사회에 미만해 있고 그것이 한국호의 앞길을 가로막는 주범이라는 뜻이다.

전태일의 분신, 광주 시민학살은 경제성장과 민주화 과정의 쓰라린 흔적들이다. 타협과 관용의 세상을 이루는데도 그만한 대가를 지불해야 할까. 불길한 예측이지만 어쩐지 그럴 것만 같다. 미시적으로는 현직 대통령이 그 모든 문제의 한 가운데 서서 뭇매를 맞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종국에는 국민 모두가 함께 떠안아야할 과제다.

요즘 주변에서 노대통령의 지지자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상황은 최악인 것 같다. 하지만 탈권력과 기존 사회관행의 혁파는 누가해도 해야 할 최대 급선무이며 그러한 대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나는 지지하는 한 표로 계속 남으려 한다. 아울러 민생경제를 염불처럼 외우는 이들에게 묻고 싶다. 대통령이 경제를 주무르는 개발독재시대를 그리워하는 것은 아닌지….

김갑수/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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