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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태규 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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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8월 말로 마감한 일본의 중학교 교과서 채택에서 후소사판 왜곡 역사교과서의 채택률이 0.4% 정도에 그쳤다. 식민 지배와 침략 전쟁을 미화한 이 비뚤어진 교과서를 지지하는 사람들이 10%의 채택을 목표로 맹렬하게 뛴 점을 감안하면, 잘 틀어막은 셈이다. 한, 일 두 나라 시민단체의 눈부신 연대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하지만 4년 전의 채택률이 0.039%였던 것에 견주면, 후소사판 교과서가 무려 열 배나 뛰어올랐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샴페인을 터뜨릴 때가 결코 아니다. 특히, 도쿄 스기나미구의 상황을 보면 더욱 그렇다. 스기나미구는 4년 전에도 후소사판 교과서의 채택을 두고 팽팽한 접전을 벌였다. 그때는 반대파가 1표 차이로 승리했다. 그러나 올해는 정반대의 상황이 벌어졌다. 4년 전 현장에서 만난 일본의 한 시민단체 대표는 “지금 좋아할 때가 아니다. 내용을 잘 들여다 보면 전국적으로 스기나미구와 같이 1표 차이로 겨우 방어에 성공한 곳이 많다. 4년 뒤 이런 곳이 잇따라 뒤집힐 가능성이 있다”고 예고한 바 있다. 이번 스미나미구의 역전패는 4년 뒤에 또다시 벌어질 싸움에서 더 많은 역전패를 예고하는 전주곡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올해의 승리가 겉모양과는 달리 내용에서는 불안한 승리라는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올해는 한-일 국교정상화 40돌이다. 두 나라 정부는 이를 기념해 올해를 ‘한-일 우정의 해’로 정하고 많은 사업을 벌이고 있다. 월드컵 축구대회를 공동 주최한 2002년에 처음 해 본 ‘상호방문의 해’의 대성공이 자신감을 불어넣었을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나타난 현상은 올해는 우정이 아니라 ‘불화의 해’였다. 그 중심에는 독도 영유권 다툼, 왜곡 역사교과서,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의 야스쿠니신사 참배라는 역사 문제가 있다. 아직도 국내에 한-일 협정을 불평등하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강한 점을 고려하면, 수교 40돌을 무슨 대단하게 기념할 일이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떤 정부의 무딘 감각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최악의 상황에서 지난달 29일부터 사흘 동안 제주도 서귀포에서 양국의 정계·재계·학계·언론계 인사 40여명이 모여 한-일 포럼(공동의장 공로명, 모기 유자부로) 제13차 연례회의를 열었다. 포럼 기간 내내 회의장을 지배한 핵심어를 꼽자면 “과거사를 둘러싼 갈등이 깊기 때문에 오히려 교류·협력은 더 필요하다”는 것이었다. 한국 사람이 느끼는 감정으로만 보면, 역사를 왜곡하는 일본과 더 사귈 필요도 없다고 내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러나 마음에 안 드는 상대방을 욕하고 내치는 것보다 쉬운 일은 없다. 더구나 한국과 일본은 동아시아에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유일한 두 나라다. 사이가 좋지 않다고 이사할 수도 없다. 서로 배제가 아니라 포용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일본에 대한 포용정책이 선택이 아니라 필수라면, 한국 쪽의 자세도 좀더 성숙하게 바뀔 필요가 있다. 일본이 독도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고, 식민 통치를 미화한다고 해서 발끈해 교류를 중단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게 아니라고 일본 쪽 사람들을 설득시키기 위해 교류를 더욱 활성화해야 한다는 식으로 말이다. 이번에 일본의 왜곡 역사 교과서의 채택 공세를 막은 일등공신은 한국과 일본 두 나라 시민단체의 교류와 협력, 그리고 연대였다. 두 나라는 현재와 미래뿐 아니라 과거 문제 해결을 위해서도 더욱 폭넓고 깊은 교류와 협력을 해야 한다. 이것이 이번 교과서 채택과정을 보고, 또 포럼에 참가하면서 얻은 나의 작은 결론이다.오태규/사회부장 ohta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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