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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4 17:35 수정 : 2005.09.04 23:19

장하준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세상읽기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 때문에 유가가 1배럴당 70달러 선을 돌파했다. 1983년 이후 최고 가격이다. 석유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미국 경제에 타격을 주지 않을까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사실 지금 미국 경제는 유가보다 더 큰 불안 요인을 여럿 안고 있다. 정부의 연간 재정적자는 국내총생산(GDP)의 4%, 가계부채 누적액은 지디피의 90% 가량으로 역사상 최고수준이며, 경상수지 적자도 연일 기록을 갱신하면서 지디피의 6%에 달하고 있다. 특히 국민소득 대비 가계 저축률은 미국에 소비 붐이 불기 시작한 1980년대에도 7%였던 것이 이제는 1% 가량으로 떨어졌다.

이런 가운데 1990년대 말에 낀 주식시장의 거품이 아직도 남아있고, 부동산 시장의 거품은 말을 아끼기로 유명한 그린스펀 연준위 총재가 노골적인 경고를 할 정도로 커지고 있다. 가계부채의 많은 부분이 거품 낀 주가나 부동산 가격을 믿고 생긴 것임을 감안한다면, 이러한 거품이 꺼질 때 지난 7~8년 동안 빚을 통한 소비로 지탱되어 온 미국 경제에 급제동이 걸릴 것이 예상된다.

미국 경제가 침체하면 지난 몇 년간 수출로 지탱되어 온 우리 경제는 커다란 어려움을 겪게 될 것이다. 대미수출의 감소뿐 아니라 이제 미국을 제치고 우리의 최대 수출시장이 된 중국에 대한 수출도 감소하게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대중국 수출품의 많은 부분이 중국이 미국에 수출하는데 필요한 기계나 부품이기 때문이고, 따라서 미국이 수입을 줄이기 시작하면 우리는 대미수출 감소와 대중수출 감소라는 이중고를 겪어야 한다.

물론 수출이 줄어드는 것 자체가 큰 재앙은 아니다. 정부가 적절한 부양책을 써 국내 소비와 투자를 진작한다면 내수가 수출수요를 대체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 우리 내수가 부진한 것이 단순한 경기순환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라는 것이다.

우선 소비 진작에 있어 구조적인 걸림돌이 되는 것은 소위 ‘노동시장의 유연화’ 이다. 외환위기 이후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최저의 정규고용률을 기록할 정도로 고용이 불안해지면서, 그리고 특히 신용카드 붐으로 신용불량자가 양산되어 있는 상태에서, 정부가 경기를 부양해도 소비자들은 쉽게 소비를 늘리지 않기 때문이다.

투자에 있어서도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에 저투자가 구조화 되어 있는 것이 문제이다. 주식시장에 상장된 기업들은 강력해진 주주들 때문에 유례 없는 고배당을 계속하고 과거에 없었던 인수합병의 위협에 대비하기 위해 현금보유를 늘리면서 투자를 꺼리고 있다. 동시에 은행들이 기업대출을 줄이고 소비자 대출을 늘리는 보수적인 “선진 금융” 기법을 쓰기 시작하면서 주식시장에 상장되지 못한 중소기업들은 투자자금의 조달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에 따라, 우리 기업의 설비투자 성향 (영업이익 대비 설비투자)은 외환위기 이전의 150~200%에서 2004년 69%로 떨어졌다. 국민소득 대비 설비투자는 1990년대 중반의 14%에서 10% 이하로 떨어졌다. 1996년에 비해 2004년에 국민소득은 39% 증가하였으나 설비투자는 96년에 비해 아직도 5%가 낮다. 저투자가 구조화되어 가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상황을 고려할 때, 고용을 안정시키고, 주식시장과 은행들의 행태를 바꾸는 구조적인 변화가 없이는 정부가 아무리 경기 부양책을 써도 내수가 살아날 수 없다. 미국의 침체로 본격적인 내수진작이 필요해지기 전에 이런 구조적 개혁을 시작해야 한다.

장하준/케임브리지 대학교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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