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4 17:38
수정 : 2005.09.04 17:38
유레카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올해 가장 불편한 휴가를 보냈다. 휴가지인 텍사스주 크로퍼드 목장 들머리에선 세계인의 눈길을 끈 시위가 연일 계속됐다. 이라크전 전몰 사병의 어머니 신디 시핸의 1인시위에서 비롯된 이 반전시위는 미국 전역으로, 전세계로 확산됐다. 부시의 지지율도 최악으로 떨어졌다.
농성 당시 시핸과 지지자들의 텐트에는 이런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이라쿼그마이어’. 이라크와 쿼그마이어를 합친 말이다. 쿼그마이어는 ‘수렁’을 뜻하지만, 미국인의 뇌리에는 베트남전으로 새겨져 있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깊이 빠지는 수렁, 미국인에게 베트남전은 수렁이었다. 인도차이나의 패권을 노린 미국은 남베트남에 1961년 군사고문단 3200명을 파견하고, 62년 4000명, 63년 1만7000명으로 늘렸다. 린든 존슨 대통령은 통킹만 사건을 빌미로 65년 18만명의 지상군 파병과 함께 북폭을 개시했다. 이듬해 48만5000명으로, 68년엔 54만9500명까지 늘렸다. 그러나 전쟁은 장기화되고 패색은 짙어갔다.
75년 철수할 때까지 미군은 5만8169명이 죽고 75만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정신질환 등으로 자살한 참전예비군도 5만여명에 이른다. 전비는 1100억 달러(현 시세로는 4940억 달러)에 이르렀다.
이라크전 2년 만에 미군 사망자는 1850명(베트남전 초기 4년간 전사자)을 넘었다. 부상자도 1만여명. 전비는 지금까지 2500억 달러, 2010년까지 1조3000억 달러가 들 전망이다. 더 끔찍한 수렁이다. 지도자의 오판은 나라를 수렁에 처박는다. 남의 일이 아니다. 게다가 ‘대연정 쿼그마이어’라는 합성어가 나올지도 모른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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