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4 17:40
수정 : 2005.09.04 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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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기섭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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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1998년 8월은 정리해고 방침에 맞선 울산 현대자동차의 파업으로 뜨거웠다. 36일 만에 협상이 타결되면서 해고된 144명의 식당 여성 조합원들에게는 더욱 그랬으리라. 누구보다 열심히 투쟁하고, 파업하는 이들 밥까지 해먹이던 그들은 명목상 노조위원장을 사장으로 모시는 하청공장 직원이 되고 말았다. 이 모순적인 상황을 감내하던 그들은 한 해 뒤 복직투쟁을 벌인다. 차별과 무관심에 분노해 2000년 1월엔 단식까지 벌였다.
그들의 투쟁 기록을 담은 ‘여성노동자 영상보고서’ <밥·꽃·양>이 있다. 그 기록에는 우리가 외면하고 감춰온 힘없는 여성 노동자들의 고통과 분노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밥 없이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뻔히 알면서도 밥하는 건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세상, 힘 없다고 무시당하는 현실을 접하면서 그들은 진실을 알아버린다. 하지만 이 영상 기록을 본 사람이라면 ‘내 탓이 아니다’라고 자신있게 말하기 어렵다. 그래서 <밥·꽃·양>은 부담스럽고 고민스럽고, 여전히 곳곳에서 진행 중이다.
이에 비하면 아시아나항공 조종사 노조의 파업은 ‘배부른 자들의 투정’이다. 하지만 여기에도 단정하기에는 뭔가 불가사의한 측면이 있다. 연봉 1억원 이상 받는다는 사람들이 뭐 그리 아쉬워 파업까지 벌였는지 …. 게다가 그 어떤 파업보다 여론의 지지를 못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25일이나 파업을 계속할 수 있었는지 …. 풀리지 않는 의문들이 꼬리를 문다.
그런데 더 불가사의한 건 파업 중단 이후다. 정신 없이 얻어맞고 빈손으로 돌아가서 풀이 죽어 있을 법한데, 그들끼리 주고받는 말들을 ‘엿들어’ 보니 전혀 달랐다. 복귀 며칠 만에 ‘멤버 오브 2005’라고 쓰인 파업 노조원 인식 목줄을 만들어 돌리고, 8월23일부터는 중앙노동위원회 앞에서 하루 4시간씩 1인 시위를 벌이기 시작했다. 7, 8월 임금을 거의 못 받을 처지인 쟁의대책위원들을 위해 모금을 벌이자는 움직임이 있는가 하면, “노조를 위해 모든 걸 포기했다”며 군인 때부터 수십년 유지하던 동기 모임을 해체하는 이들도 있다. 먼저 비행에 투입되면서 대기하고 있는 동료들에게 미안해하기도 한다. “비행 나와서 집회 못 가면 하루종일 찜찜하고 답답하다. 돈도 없는데 투쟁기금 막 내고 싶어진다”며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는 소리도 들린다. 그렇다고 꼭 자신들만 똘똘 뭉치는 게 아니다. 한 제과회사 노조 연대투쟁에 나가기로 한 조합원들도 있다고 한다.
“노동자는 하나다”라는 발언이 어색하지 않게 된 그들은 분명 과거의 그들이 아니다. 그들은 안전 운항을 내세우면서 “대한항공과 같은 대우를 해 달라”고 하면, 세상이 어느 정도는 이해해주리라고 ‘순진하게’ 생각했음이 틀림없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그들에게 돌아온 것은 ‘귀족노조’라는 딱지뿐이다. 그래서 25일 만에 남은 것은 분노와 불안의 시간을 함께 한 402명뿐이다. 아니 이젠 파업 뒤 합류한 2명을 더해 404명이다.
철학자 스티븐 툴민과 앨런 재닉은 “우리는 과학을 통해 사실을 알고 싶어 한다. 삶의 문제에서 사실은 중요하지 않다. 삶에서 중요한 것은 타인의 고통에 응답하는 능력이다”라고 했다. ‘밥짓는 여성 노동자’ 속에서 나 자신의 거짓을 보지 않은 채 그들의 고통에 응답하겠다는 게 ‘위선’이라면, 조종사들의 분노의 뿌리를 외면한 채 그들의 겉모습만으로 판단하는 건 ‘폭력’이 아닐까? 그래서 찜찜하고 두렵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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