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5 18:59
수정 : 2005.09.05 18: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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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용립 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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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미국 남부 도시 뉴올리언스를 휩쓸었다. 해수면보다 낮은 늪지대의 도시라 제방 보강 공사가 진작 필요했지만 이라크 전쟁으로 토목 예산이 삭감당하고 천재지변에 대처할 주 방위군의 상당수와 군 장비마저 이라크로 차출당한 상황에서 터진 재난이다. 테러와의 전쟁이 오히려 테러보다 더한 자연의 테러를 자초했다는 비난도 나오고 있다. 그래서 ‘사령관 부시’ 휘하에 전 국민을 결집했던 뉴욕 테러 당시와 달리 지금의 부시 행정부는 예고된 자연의 테러도 막지 못하면서 예측 못할 인간의 테러를 막겠느냐고 빈정대는 여론에 직면해 있다. 재난이 덮친 순간에 대통령과 부통령은 휴가를 즐기고 라이스 국무장관은 맨해튼 5번가에서 페라가모 구두를 쇼핑하던 나라 미국은 이제 아메리카 합중국에서 ‘치욕의 합중국’(United States of Shame)으로 타락했다고 개탄하는 독설가 칼럼니스트 모린 다우드의 말처럼 이번 재난은 ‘9·11’에 이어 미국의 또 다른 치욕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러나 테러를 박멸하려는 부시 행정부의 의지가 이런 비난 때문에 약화될 리는 없다. 종교전쟁에서 적은 인간이 아니다. 그런 뜻에서 미국의 테러전은 종교전쟁이다. 그렇지 않다면 인권의 사도를 자처하는 미국이 5백명이 넘는 아프가니스탄 전쟁포로와 알 카에다 연루 혐의자들을 4년 가까이 초법적으로 감금하고 있는 관타나모 기지의 수용소를 설명할 길이 없다. 기묘하게도 미국의 적성국인 쿠바 땅에 있는 관타나모 해군기지는 미국이 스페인으로부터 쿠바를 독립시킨 후 임대한 것으로, 국제법상 쿠바 영토지만 양국간의 합의나 미군 철수 말고는 임대를 종료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미국 영토다. 그래서 미국은 포로를 미국법에 따라 재판하라는 비난에 대해서는 관타나모가 외국 영토라고 맞서고, 해외에서의 고문 행위를 금지하는 미국 형법을 피해 나가야 할 때는 관타나모를 ‘미국의 특별 관할’ 지역으로 정의한다. 이런 억지를 부리면서까지 테러 연루자에 대한 국제법적 처우를 거부하는 명분은 간단하다. 테러전도 분명히 전쟁이며 미국 대통령은 자신을 미국 군대의 총사령관으로 명시한 미국 헌법에 의해 ‘스스로의 판단’에 따라 전쟁을 치를 권한을 부여받았다는 것이다. 이런 논법에 따르면 미국 대통령이 마음만 먹으면 테러전의 적에 대해 어떤 조치를 해도 정당한 것이 된다.
이처럼 테러리스트와 보통사람을 구별해서 대접하는 미국이 근래의 북핵 협상 테이블에서 다소 유연해졌다고 해서 북한을 대하는 미국 정부의 시각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미국이 보기에 ‘민주화’ 이전의 북한은 항상 잠재적 테러 지원국이다. 비록 적십자를 통하기는 했지만 평양 당국이 이례적으로 뉴올리언스의 재난에 위로의 뜻을 전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의미 있는 일이다. 즉 북한이 미국 국민의 적이 아니라 인류의 재난과 고통을 동정하는 평범한 나라이며 인간이나 자연의 테러에 희생된 자들에게 무심한 냉혈국가가 아님을 표시한 외교 행위로 봐야 한다. 9월 3일치 뉴욕타임스도 ‘미국을 정치적 저능아가 지도하는 악의 나라로 부르는 공산국가로서는 보기 드문 제스처’라고 보도했다. 별 것 아니지만 미국이 받아들이기에 따라 이런 일은 삭막한 북-미간 협상의 윤활유가 될 수도 있다. 북한을 인권 유린국가로 보는 미국에 대해 평양이 사용할 수 있는 강력한 무기는 몇 개 안되는 핵탄두가 아니라 인간이 겪는 일상의 고통을 그들도 동정한다는 온화한 메시지다.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저지른 ‘뉴올리언스 테러’에 전한 평양의 위로 메시지와 추후 행보에 주목하는 까닭은 이것이다.
권용립/경성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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