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5 19:03
수정 : 2005.09.05 1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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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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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칼럼
엊그제 잘 아는 출판인 한 분이 찾아왔다. 꽤 여러 해 출판 일에서 물러나 있다가 출판사를 다시 차렸다고 하면서 그동안 만든 책 몇 권을 들고 왔다. 건네받은 책 세 권은 재판을 찍었지만 다른 책들은 아직 초판에 머문 상태라고 한다. 출판일을 다시 시작하겠다고 했더니 친구가 말리면서 “출판시장은 정글이야, 새끼가 사자한테 잡혀 먹혀도 뒤돌아보지 말고 달려야 하는 정글이라는 거 알잖아.”하더라는 이야기를 한다. 정글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곳곳이 정글 아닌 곳이 없다. 정치판은 물론이고 언론, 금융, 전자, 건설 현장에서 음식점 골목까지 자본주의 시장 구석구석이 정글 아닌 곳이 없다. 적자생존의 치열한 밀림이다.
매일 같이 신문에 실리는 많은 글들도 정글에서 어떻게 살아남을 것인가에 대한 이야기가 많다. 형식과 분야만 다를 뿐 정글의 법칙, 정글에서 신사적으로 살아남기, 정글의 사회학, 정글의 현 상황과 미래, 냉혹한 정글의 실태와 분석인 경우가 많다. 텔레비전을 통해 동물의 세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볼 때마다 살육과 생존의 처절한 현장인 밀림과 우리가 사는 세상이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내면화 해왔다. 그것을 사회진화론이라 부르고 있다.
그러나 정작 밀림에서 수십 년씩 살면서 동물의 세계에 대해 연구한 동물행동학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동물의 세계에서 생존의 첫째 원리는 약육강식이 아니라 공존 공생이라는 것이다. 정글은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참혹한 살육의 현장이 아니라 서로 도와가며 살아야 잘 살아남을 수 있는 공동체의 터전이라는 것이다. 비투스 드뢰셔에 의하면 사바나개코원숭이들의 사회에서 우두머리는 가장 힘이 세고 사나운 수컷이 아니라 가장 지혜로운 암컷이다. 우리가 거칠고 사납다고 생각하는 늑대 사회에서도 공격적인 수컷이 우두머리가 되는 것이 아니라 먹이를 잘 찾아내어 무리의 생존을 지켜주는 지혜로운 수컷이 우두머리가 된다고 한다. 인간의 회사처럼 운영되는 늑대무리가 있다면 그 늑대들은 자멸할 것이라고 한다. 뱀처럼 치명적인 독이나 무기를 가진 동물들도 같은 종끼리 싸울 때는 서로에게 독을 사용하지 않는다. 같은 종끼리 가장 잔인하게 서로 해치고 죽이는 동물은 사람이 으뜸이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는다는 폭력적인 원칙이 옳다면 지금 세상에는 크고 막강한 괴물들만이 남아 있어야 할 것이다. 인류의 내면에는 살인적인 짐승의 유산이아니라 세련된 평화전략을 타고난 사바나개코원숭이의 모습이 숨어 있다고 한다.
크로포토킨은 상호투쟁만이 자연법칙이 아니라 상호부조 역시 자연법칙이라고 한다. 끊임없이 서로 싸우는 종들과 서로 도움을 주며 살아가는 종들 중에서 어느 쪽이 적자일까? 의심할 여지도 없이 상호부조의 습성을 가지고 있는 동물들이 적자라 한다. 다윈도 자연의 변화에 가장 적응을 잘한 종들은 육체적으로 강하거나 제일 교활한 종들이 아니라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 강하든 약하든 동등하게 서로 도움을 주며 합칠 줄 아는 종들이었다고 말하고 있다. 서로 도우며 살 줄 아는 사회성, 상호부조의 태도가 진화의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이 그들의 생각이다. 어떤 새매는 약탈하기에 아주 적합한 유기조직을 가지고 있는데도 사라져 가는 데 비해 사회성이 발달된 오리의 경우는 빈약한 유기조직을 가지고 있지만 종의 숫자가 셀 수도 없이 많다. 공동체의 구성원이 배고프고 목이 말라 먹이를 달라고 요청하면 이미 삼킨 먹이도 게워 나누어 주는 것이 개미에게는 의무라고 한다.
정글이란 말을 치열한 생존투쟁의 현장이란 의미로 사용하고 있는 우리들이 정말 살아봐야 할 곳 중의 하나가 숲속이다. 밀림이 조화와 평안함으로만 이루어져 있진 않지만 평화와 공생의 새 힘을 얻을 수 있는 곳이야말로 자연이며 결코 살육의 세상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게 될 것이다.
도종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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