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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6 17:35 수정 : 2005.09.06 17:35

김두식 한동대 교수·변호사

세상읽기

지난 대선 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제 주변에서는 눈 씻고 봐도 노무현 지지자를 찾기 힘들었습니다. 잠시나마 법조계에 몸담았고, 보수적인 기독교계열의 대학에서 가르치고 있는, 경상도 본적의 대학교수에게는 당연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무래도 저와 비슷한 보수적 배경을 지닌 사람들과 주로 어울릴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래서 <한겨레>에 처음 글을 쓸 때 ‘동료들에게 왕따 당하면 어쩌나’ 걱정도 했습니다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하지 않습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제 주변의 ‘여유 있는’ 친구들은 제 글은 물론 아예 <한겨레>를 보지 않더군요.

덕분에 지난 3년간 저의 정체를 잘 모르는 지인들로부터 재미있는 이야기를 많이 전해 들었는데요, ‘멀쩡한’ 분들이 꺼내놓는 단골 메뉴는 대개 이런 것이었습니다. “우리 대통령에게 보고된 내용이 다음 날이면 김정일의 책상 위로 올라간다더라.” “노무현 당선으로 적화는 이루어졌으므로, 북한 놈들이 이제 통일만 남았다고 한다더라.” “공산당이 가장 무서워하는 것이 목사님들이므로, 다음 목표는 교회라더라.” 제가 일일이 반박하지는 않았습니다. 권력주변의 가십을 흘리는 걸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곤 했던 어르신들이 최근의 ‘정보 금단 현상’ 속에서 억지로 제작한 이야기들에 우리가 가치를 둘 필요는 없으니까요. 대신에 저는 노 대통령이 임기를 무사히 채우기만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날이 오면 ‘적화통일’ 운운하던 분들께 이렇게 여쭤보리라 마음먹었지요. “남북한 최고위층이나 접할 법한 그런 정보들은 어디서 들으셨어요. 혹시 이중간첩?”

나라가 당장 망할 것처럼 떠드는 그 분들을 보면서 오히려 대통령이 복 받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당장 망할 위기 속의 정부라면, 그저 살아남아 주기만 해도 성공한 정부가 되지 않겠습니까. 노무현 정부가 보여주는 모호한 행보가 아슬아슬하기는 했지만, 가끔 아주 가끔, 아직도 희망을 버리지 못한 동조자들을 만날 때면 여전히 반가웠습니다. 지지율이 20%이든 30%이든, 나 혼자가 아닌 걸 확인하는 것만으로도 감사했지요. 그리고 기회만 주어진다면 이 정부가 많은 일을 해내리라 기대했습니다. 대통령 한 사람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개혁적인 민주 정부에 대한 기대였고, 잘 해서 지지한 것이 아니라 잘 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한 번이라도 제대로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런 기대가 있었으므로, 임기 절반에 벌써 다 끝난 것처럼 떠드는 보수 언론을 향해 마음 속 깊이 이렇게 외칠 수 있었습니다. “헤이, 미안하지만 아직 절반이나 남았어!”

그러다가 ‘29% 지지 대통령’의 한탄을 들었습니다. ‘듣는 29%’의 가슴, 참 쓰리더군요. 유시민-조기숙 콤비의 설명에도 불구하고 저의 나쁜 머리만 탓했을 뿐, 알 수 없는 불편함은 가시지를 않았습니다. 한나라당과의 연정으로 어떤 개혁이 가능한지 상상할 수 없는 까닭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박 대표와 만나는 대통령께 ‘상상력 부족한 자의 인상비평’ 수준에서나마 한 말씀 드리기로 용기를 냈습니다. 한나라당과 손잡느니 차라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세요. 대통령께는 아직 절반의 임기, 방향만 제대로 잡으면 언제든 돌아올 지지층과 동지들, 그리고 지난 2년 반의 무시 못 할 경험이 남아 있습니다. 이런 기회들을 그냥 놓아둔 채 대통령께서 더 이상 기회가 없다고 생각하시는 순간, 하늘이라도 그런 대통령께는 기회를 줄 수 없습니다.

참여정부가 잘 해주기만 기대하고, 기도하며, 기다려온 29%의 존재를 잊지 마세요, 제발.

김두식/한동대 교수·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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