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9.07 21:55 수정 : 2005.09.07 21:55

진선미 변호사

야!한국사회

“단순히 운전기사와 사모님 관계라면 명품구두를 사줄 수는 없지 않나요?”

“오랜 기간 성실하게 일해 왔고, 친척 관계에 있는 운전기사라면 선물해줄 수도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지난 8월31일 열린 제2차 국민참여 형사 모의재판에서 배심원으로 참여한 일반시민들 사이에 오고간 대화의 일부이다. 비록 ‘모의’라고는 하나, 실제 재판에서는 철저히 비밀로 이뤄질 배심원 평의 과정을 직접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경험은 무척 값졌다. 더욱이 “배심원들의 심리를 잘 표현한 명작”이라는 흑백영화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며칠 전에야 감탄사를 연발하며 밤늦게까지 감상한 뒤라, 지난해 1차 모의재판의 변호인으로 참여했던 경험과 비교해가며 시종 흥미진진하게 지켜볼 수 있었다.

이번 모의재판은 국회에 제출된 법안에 맞춰 구성됐다. 배심원 수가 미국보다 3명이 적은 9명이어서 견해의 다양성이 부족해 보였고, 만장일치가 아닌 다수결로 의견을 정하도록 하거나, 의견이 나뉘면 판사의 의견을 들을 수 있게 한 점 등도 배심재판의 장점을 약화시킬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배심재판 제도가 2007년께 사법개혁의 일환으로 도입되더라도 여전히 시험적 단계라는 사실을 감안하면, 이런 작은 아쉬움보다는 배심원의 판단능력을 신뢰할 수 있느냐가 더 핵심이다.

배심재판이 무엇인가. 간단히 무작위로 선정된 일반시민들이 재판의 사실인정 절차에 직접 참여하여 판단을 내리는 제도이다. 다른 나라의 법정영화를 통하여 여러차례 소개는 되었으나, 실제로 도입하기에는 누구에게나 낯선 제도이다. 배심재판이 도입되려면 우리 국민들은 어떨까, 제대로 판단할 수 있을까, 우려와 기대가 교차할 수밖에 없다. 이를 검증하기 위해 마련된 것이 바로 모의배심재판이었는데, 그 결과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미 일반시민들은 놀라운 수준에 와 있었다. 비교적 짧은 시간이었음에도 검사와 변호인이 법정에 제출한 여러가지 증거물이 믿을 만한지 나름의 상식에 따라 평가했고, 증인들의 증언도 열심히 경청했다. 그 뒤 다른 배심원들과 의견을 교환하면서 차이를 좁히기 위하여 서로 설득하고 유죄냐 무죄냐의 결론을 도출해가는 과정이 너무나 합리적이었다. 오히려 밖에서 관전하던 법률가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들까지 지적하는 걸 볼 땐 감탄이 절로 나오기도 했다.

이런 신선한 충격의 한편으로는 판단의 오류를 방지하기 위해 증거법을 비롯한 형사재판 절차나 수사 절차가 탈바꿈해야 할 것이라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변호 방법도 전면 수정이 필요한 것은 당연한 이치. 배심재판이 그동안 조문으로만 남아 있던 공판중심주의가 효력을 발휘하고, 불구속의 원칙이 지켜지며, 피고인의 자백에 지나치게 의존하지 않는 한편, 과학적인 수사기법이 획기적으로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지금까지 법률전문가가 아닌 일반인이 형사재판에 참여하는 모습은 피고인, 증인, 그리고 방청인이 전부였다. 그러나, 이제는 배심원이 되어 한 사람의 인생을 좌우할 수도 있는 결정을 내려야 한다. 오로지 홀로 자신의 상식에 의존하여서 말이다. 오판에 대한 심적 부담도 크고, 생업을 뒤로 한 채 자신과 상관없는 일에 변변한 보상도 못받고 매달려야 하며, 판단이 다른 누군가와 끊임없이 논쟁해야 한다. 위 영화가 배심원을 ‘성난 사람들’로 표현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제도는 여러모로 우리의 시민의식을 시험하고 있는 것이다. 이 참에 <12명의 성난 사람들>을 독자들도 한번 봤으면 좋겠다.


진선미/변호사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