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07 21:57
수정 : 2005.09.07 2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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딘 베이커 미국 경제정책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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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창
이달 18일 열리는 독일 총선은 독일이 새로운 진로에 들어서는 계기가 될지 모른다. 앙겔라 메르켈 기민당 총재는 과거와의 철저한 단절을 약속하고 있다. 지난 50년 동안 독일 노동자에게 안정을 제공해온 각종 보호 장치들을 축소하기를 원한다. 특히 상대적으로 관대한 연금과 실업급여를 크게 삭감하고자 한다. 노동조합의 힘도 상당히 약화시키기를 바란다. 이런 측면에서 그의 모델은 영국과 미국 경제이다.
지난 15년에 걸쳐 영국과 미국은 대부분의 유럽대륙 국가들보다 성장률은 높고 실업률은 낮았다. 그 원인으로 두 나라의 약한 노동자 보호 장치들을 꼽는 게 매력적일 수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좀 더 명백한 요인이 있다. 바로 금융 거품이다. 지난 10년의 대부분에 걸쳐 두 나라는 막대한 금융 거품을 누려 왔다. 미국에서 주식시장 거품은 2000년 정점에 이르렀을 때 거의 10조원의 거품 부를 창출했다. 이는 미국의 연간 국내총생산과 맞먹는 규모다. 주식 거품 붕괴 이후 이번에는 주택 거품이 커지며 경제를 부양하는 요인이 됐다. 미국에서 주택 거품은 5조원이 넘는 부를 만들어냈다. 2001년 불황 이후 미국 경제 성장률의 절반을 훨씬 웃도는 부분이 주택 거품에 따른 것으로 추정된다. 경제 규모와 견줘볼 때 미국보다 영국에서 주택 거품은 훨씬 더 크다.
거품 주도 성장이 한계점에 이른 것처럼 보이는 지금, 독일 유권자들이 ‘영미 모델’을 선택하려는 상황은 아이러니다. 영국에서 주택값 상승세는 지난해부터 수그러들기 시작했다. 이미 제자리 걸음에 이를 정도로 경제 성장은 둔화했다. 값이 실제로 떨어지기 시작하면 불황이 뒤따를 것이다. 미국은 이런 과정에서 아직은 벗어나 있다. 하지만 앨런 그린스펀 연방준비제도이사회 의장은 다가오는 어려운 시기에 대해 점점 더 비관적 태도를 보여 왔다. 그는 미국 주택 거품을 터뜨리기 위해 필요한 만큼 금리를 올릴 것이다. 지금까지 일본·중국의 중앙은행들이 주택저당채권(모기지) 금리를 올리려는 그린스펀의 노력을 상쇄했지만, 그는 결국 성공할 것이다. 그러면 주택 거품은 터지고 경제는 하강할 것이다. 석유값 상승에서 비롯하는 인플레이션에 대한 두려움은 이 과정을 촉진할 수 있다.
독일 유권자들은 이웃 국경 밖으로 눈을 돌려 촘촘한 노동시장 보호 장치들과 견실한 경제 성장을 동시에 이룰 수 있음을 볼 필요가 있다. 북쪽 국경의 북유럽 국가들은 독일보다 강력한 노동시장 보호 장치들을 갖고 있지만 실업률은 미국과 같거나 더 낮다. 동쪽 국경의 오스트리아도, 서쪽 국경의 네덜란드도 그렇다. 사실, 노동시장 보호 강도와 실업률 사이에 아무런 관계가 없음을 보여주는 많은 연구들이 있다. 실제로, 스페인·이탈리아처럼 노동시장 보호 강도가 매우 약한 나라들은 실업률이 일관되게 높았다.
영국·미국의 경험이 독일에 주는 교훈이 있다면, 두 나라의 중앙은행이 펼친 확장적 통화정책이 경제 부양에 많은 구실을 했다는 점이다. 금융 거품이라는 어두운 측면을 동반하긴 했지만, 이들은 유럽중앙은행보다 훨씬 더 확장적 통화정책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불행하게도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은 이번 선거의 주요한 논점이 아니다. 오히려 강력한 경제를 원한다면 노동시장 보호 장치들을 내버려야 한다는 기민당의 주장이 많은 유권자들을 설득해 왔다. 기민당이 선거에서 이긴다면 독일은 경제 안정을 포기하는 대가로 아무런 경제 성장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딘 베이커/미국 경제정책연구센터 공동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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