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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08 18:30 수정 : 2005.09.08 21:02

김병수 논설위원

아침햇발

[3판] 앨런 그린스펀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 의장이 최근 미국 주택가격의 거품 가능성을 강도높게 경고했다. 폴 크루그먼 프린스턴대 교수는 한 칼럼에서 경고가 너무 늦었다며 비판했다. 그래도 그린스펀은 그동안 금리를 계속 올렸다. 그가 시장에 던지는 한마디의 무게는 여전히 천금 같다. 한국은 어떤가. 집값과 땅값이 치솟는데도 한국은행은 도리어 금리를 내려 투기를 부추긴 꼴이 됐고, 지난해 11월 이후로는 이달까지 금리 동결이란 동면 상태에 빠져 있다. 박승 한은 총재가 이따끔 부동산 가격 급등에 대한 우려를 나타내거나, 금리 인상 가능성을 내비치긴 했다.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시장은 회의적이었다. 말뿐, 정책으로 가시화하지 않는 일이 반복된 탓이다.

한은은 취업 희망자들에게 선망의 대상이다. 중앙은행 직원이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데다, 보수도 최상급이다. 학생 땐 ‘엘리트’ 소리를 듣던 2200여명의 우수한 인력들이 모였다지만 한은은 국민의 주목 대상에서 멀어져 있다. 역동성은 찾아보기 어렵다. 절에 빗대 ‘한은사’라는 말까지 나온다. 무기력을 호소하는 직원들도 많아졌다.

한은 직원들은 금융감독원이 설립되면서 은행감독원이 떨어져나갔기 때문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힘을 쓸 감독 기능이 없어지니 ‘말발’이 안 서고 일하기도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잘못된 하소연이다. 한은은 통화신용 정책을 책임지는 기관이다. 그 자체만도 막강한 힘이다. 금리를 올리고 내리는 건 한은의 고유 권한이다. 경제에서 민간 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개방이 가속화하면서 거시경제 정책에서 정부 역할은 많이 줄었다. 그래서 통화신용 정책은 더욱 중요하다. 그러나 한은은 이 힘을 스스로 방치했다. 정책은 선제적일 때, 그리고 변화가 있을 때 제대로 효과를 발휘하지만, 한은은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한은은 “통화신용 정책이란 물가안정을 통하여 경제가 건전하게 발전할 수 있도록 돈(통화)의 양과 흐름을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이라고 스스로 정의하고 있다. 그러면서 “통화량이 경제 규모에 비하여 지나치게 많으면 경기 과열과 그에 따른 물가 상승 및 투기가 일어나게 되고 …(중략) … 경제가 지속적으로 발전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통화량을 알맞은 수준으로 조절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하고 있다. 한은이 이에 걸맞게 해 왔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부동 자금이 넘친다. 부동산 투기는 극성을 부리고, 그로 인해 경제의 지속 가능한 발전이 위협받고 있다. 그런데도 적절한 돈 조절은 간데없다. 그래도 물가는 안정돼 있지 않냐며 저금리 정책을 합리화해 왔을 뿐이다. 직무유기라고 할 만하다.

금리를 언제 조정하는 게 옳은지는 섣불리 판단하기 어렵다. 그렇지만 돈 흐름 때문에 곳곳에서 문제가 불거지는데 1년 가까이 좌고우면하는 건 기능 상실에 가깝다. 행여 이 눈치 저 눈치 보며 ‘판단이 어려울 땐 무책이 상책’이라는 식으로 몸을 사려온 건 아닌지. 총재나 금융통화위원 등 수뇌부 탓만도 아니다. 2200여 한은 직원들은 구경만 했나. 치열한 토론과 내부 비판이 있어야 했다. 이제는 금리를 올려야 한다는 여론에 끌려 다녀야 할 처지가 됐다.

박 총재 시대는 이제 반년 남짓 남았다. 그의 4년 임기 중 풀려 나간 돈을 수습하고 통화신용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는 일은 다음 총재에게 버거운 짐이 될 듯하다. 그 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서라도 한은은 잠에서 깨어나야 한다. 총재가 못하면 직원들이 일어나 중앙은행의 위상을 찾아야 한다.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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