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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노필 국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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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에서
미국 남부 일대를 휩쓴 허리케인 카트리나 재난은 말 그대로 대참사다. 아직도 정확한 피해 규모를 짐작하지 못한다. 인명 피해 1만명에 재산 피해는 200조원까지 거론된다. 무려 100만여명이 생존을 위해 전국으로 흩어졌다. 유독성 물질에 대한 경고도 꼬리를 문다. 가히 대재앙이라 할 만하다. ‘치욕의 합중국, 멸시가 부른 죽음, 제3세계 미국, 잊혀진 자의 분노 ….’ 초강대국에서 벌어진 이 ‘이해 못할’ 재난을 두고 다양한 해석들이 쏟아진다. 풍요의 대명사격인 이 나라가 어찌 이리 무력할 수 있었을까? 세계의 경찰임을 자부하는 조지 부시 행정부의 관심은 나라 안보다 밖에 있다.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기 위해서다. 지금의 초점은 이라크다. 미국이 이라크 침공 뒷감당을 위해 쏟아붓는 돈은 한 달에 56억달러다. 그러는 사이 2000여억달러 흑자였던 정부 재정은 4년 만에 4000여억달러 적자로 둔갑했다. 그럼에도 부시 행정부는 오히려 세금을 적게 거두는 정책을 폈다. 배당금을 비롯한 자본이득에 매겨온 세금을 줄여주는 게 주된 내용이다. 부자들이 세금 낼 돈으로 투자를 하도록 해 경제를 살린다는 게 명분이다. 하지만 결과는 부자들의 호주머니만 불려주는 꼴이 됐다. 빈부격차는 더욱 심해졌고, 빈곤층은 4년 내리 증가세다. 빈약해진 국고의 희생양은 미국의 사회적 약자들이었다. 그들은 그렇게 사회의 약한 고리가 돼 갔다. 카트리나는 그 고리를 일거에 뽑아버렸다. 그 안에서 불거져 나온 것은 인종갈등과 빈부격차였다. 흑인과 빈곤층이 많은 뉴올리언스는 이 두 가지 미국병을 고스란히 떠안고 있는 도시다. 뉴올리언스 인구 10명 중 7명이 흑인이다. 뉴올리언스의 빈곤층 비율은 미국 평균의 갑절을 웃돈다. “뉴올리언스 출신들도 대평원이나 대서양 연안 지역 주민들과 똑같은 미국인입니다.” 지난 4일 뉴올리언스 지역신문에 실린 ‘대통령에게 보내는 공개편지’에는 방치돼 온 사회적 약자들의 한이 배어 있다. 부시 행정부의 이런 정책을 관통하는 것은 힘의 논리다. 이른바 네오콘(신보수주의)이나 신자유주의로 불리는 것들이다. 이라크 뒷감당에 매달 수십억달러를 쏟아부으면서도 정작 자국의 약자들을 위한 1억달러짜리 홍수 방지 예산은 뭉텅 잘라버린 까닭이 여기에 있다. 본디 미국은 세계의 다양한 인종을 받아들여, 그것을 활력의 원동력으로 삼고 있음을 자랑해온 나라다. 미국의 탄생 배경부터 그렇다. 힘의 논리는 이와 맞지 않는다. 다양성을 융합의 토대가 아니라 갈등의 씨앗으로 바꾼다. 11일은 뉴욕 세계무역센터를 무너뜨린 9·11 테러 네돌이 되는 날이다. 4년 전 이맘때엔 그래도 세계가 미국과 함께 고통을 나누려 했다. 이번엔 좀 다른 듯하다. 그동안 세계 도처에서 갈등의 씨앗이 훌쩍 자란 것인가?하지만 부시 행정부가 앞으로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막대한 구호·복구 물량 공세로 또다시 힘을 과시할 것인가, 차분히 공동체 회복의 길을 찾을 것인가?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국은 더욱 갈라질 수도, 새 구심점을 찾을 수도 있다. 세계와 더 가까워질 수도, 멀어질 수도 있다. 후일 씻을 수 없는 수치로 기록될 수도, 위기를 기회로 바꾼 지혜의 시기로 기록될 수도 있다. 때마침 이제는 테러와의 전쟁보다 국내 문제에 더 신경써야 한다는 미국내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과연 미국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외환위기 이후 미국적 생존방식의 틀 속으로 깊숙이 빠져버린 우리에게도 미국의 선택은 남의 일이 아니다. 곽노필/국제부장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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