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11 17:32
수정 : 2005.09.1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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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구 경제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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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한나라당이 ‘세금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한마디로 감세를 통해 국민 세금 부담을 줄이고, 무리한 재정 확대를 막겠다는 것이다. 반면 열린우리당은 ‘세금 전쟁’이 허구로 가득 차 있다며 적극 반박에 나섰다. 양쪽의 의도나 진실성 여부를 떠나 세금 문제를 놓고 여야가 치열한 논쟁을 벌이는 것은 어쨌든 바람직한 일이다.
‘세금 전쟁’을 바라볼 때 우선 염두에 둬야 할 것은 그것이 대단히 정치적이라는 점이다. 정치적이란, 여야 모두 겉으로는 ‘국민’을 위해서라고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자신들과 정치적 이해를 같이하는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한다는 뜻이다. 이런 정치적 측면을 고려하지 않고 ‘세금 전쟁’을 보다 보면, 자신에게 손해를 끼치는 정책을 열렬히 지지하는 ‘바보’가 되기도 한다.
그래서 여야의 정책이 어떤 계층의 이해를 반영하는지를 꼼꼼히 따져보는 게 필요하다. 감세의 경우를 보자. 감세를 하면 혜택을 더 많이 보는 층은 그동안 세금을 많이 내던 기업이나 국민들이다. 감세를 통해 서민들의 세부담을 줄여주겠다고 하지만 이는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근로소득자 중 소득이 면세점 이하여서 세금 한푼 안 내는 이른바 ‘서민’들이 전체의 절반에 이른다. 이들에게는 아무리 감세를 해보았자 그저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 ‘그림의 떡’을 실제로 꺼내 먹을 수 있는 계층은 주로 고소득층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감세를 해주면 중소기업보다는 재벌 등 대기업이 주로 혜택을 받게 된다.
또 하나는 감세를 할 경우 기업의 투자나 개인들의 소비가 얼마나 늘어날 것이냐다. 정부가 세금으로 걷지 않고 이를 민간부문이 투자하게 하면 훨씬 효율적이라는 게 경제학 교과서 이론이다. 하지만 기업들이 쓰지 않고 쌓아둔 여윳돈이 70조원이나 된다는 현실에서 감세를 통해 몇조원 더해진다고 투자가 얼마나 더 늘지는 엄밀하게 따져봐야 한다. 교과서와 현실이 어긋나면 교과서를 수정해야지 현실이 잘못 가고 있다고 탓할 일은 아니다.
축소 재정이냐 확대 재정이냐의 문제는 좀더 복합적이다. 민간(시장)의 역할을 중시하는 쪽은 세금을 적게 걷고 그것에 맞는 나라살림을 꾸리라고 한다. 이는 결과적으로 정부 지원 없이도 치열한 시장경쟁을 통해 살아남을 수 있는 사회적 강자들에게 유리할 가능성이 높다. 반면 확대 재정은 정부가 세금을 더 거둬 필요한 부분, 즉 사회적 소외 계층에 집중적으로 투자하겠다는 성격이 강하다. 확대 재정의 경기부양적 측면이 거론되기도 하지만 부문별 예산편성 내역을 볼 때 이런 기능이 현저히 줄고 있어 큰 의미는 없다.
확대 재정은 곧바로 국가채무 논란을 불러온다. 최근 확대 재정을 위해 계속해서 연간 10조원 가까운 적자 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분명 문제다. 불과 5년 전인 2000년에 112조원이었던 국가채무 규모는 이미 200조원을 넘어섰다. 하지만 통계 수치는 항상 상대적이기 때문에 균형 있게 봐야 한다. 국내총생산(GDP) 성장 규모, 국가채무의 구체적 내역, 선진국의 국채 규모 등과 비교하면서 ‘국채 논란’을 바라봐야 객관적인 평가를 할 수 있다.
‘세금 전쟁’은 정치세력 간의 정체성 차이를 비교해볼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잣대다. 여야는 논리적으로 상대방을 제압하려고 각종 통계를 자신에게 유리하게 해석하고 때로는 과장·왜곡하며, ‘혈세’나 ‘서민들의 주머니 털려는 발상’ 등 선정적인 언어를 동원하기도 한다. ‘세금 전쟁’의 의미를 제대로 보고 판단하려면 이런 가면부터 벗겨내는 게 우선이다.
정석구 경제부 기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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