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11 18:38
수정 : 2005.09.11 18:38
|
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
세상읽기
대통령의 연정론에 대한 논란들이 이미 넘치고 있는 마당에 또 다시 보탤 말이 있을까? 연정론이 일단 물 건너간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배경에 담겨진 정치구상의 의미와 그 파장이 앞으로 더 엄청난 국가적 소모전으로 비화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한 마디만 보태고 싶은 심정이다.
연정론의 진정성은 무엇인가? 겉으로 내놓는 수사학과 속으로 헤아리는 계산법이 어떻게 맞아떨어지는 건지 다양한 해석들이 나오고 있다. 필자의 관심은 한 가지에 있다. 그 진정성이 수사학으로 제시된 것처럼 ‘새로운 정치역사’를 쓰기 위한 것인지, 이것이 현 정권이 애초에 내걸었던 ‘개혁 패러다임’에 근거한 것인지에 관한 것이다.
이에 대한 답은 의외로 쉽다. 대통령 스스로가 확인해주었듯이 현 정부의 정책노선은 한나라당과 차이가 없다. 따라서 연정에 무리가 없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한나라당과 합당이 더 옳다는 의견도 있을 수 있다. 그렇다면 연정을 통한 ‘지역주의 정치청산 기획’은 결국 지난 2년반동안 현 정권이 보여준 한나라당과 친화적인 보수정책노선을 ‘좀더 노골적으로 자유롭게’ 펼쳐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될 수밖에 없다. 이로써 한나라당의 지지층이 열린우리당의 지지층과 결합하면 열린우리당은 더 이상 정체성 논란에 골머리를 앓을 필요도 없이 대번에 거대보수정당으로 환골탈퇴할 수가 있을 것이 아닌가? 이 지점에서 열린우리당은 ‘개혁세력’의 오해를 벗을 수도 있다. 일거양득이다.
사실 이 시나리오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다. 민주화세력의 이름으로 이루어졌던 3당 합당, 디제이피 연합, 정권말기마다 되풀이되어온 내각제 개헌의 연장선상에서 충격과 파격을 가미한 독특한 스타일을 보여준 것일 뿐이다. 여기서 그 진정성은 또다시 권력재창출에 있고, 이번에도 진정한 개혁의 청사진을 염원해온 국민이 어리석었음을 아주 확실하게 일깨워주는 것에 있다. 따라서 그 솔직함을 비난하기보다는 오히려 고마워해야 할는지도 모른다. 더 이상 개혁에 대한 환상도 실망도 없다면 개혁을 원하는 또 다른 세력이 필요하다는 사회적 합의가 쉽게 이루어질 수 있을 터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시 대두될 새로운 개혁세력 역시 연정의 대상이 될 가능성도 있다. 그 때의 수사학은 또 다시 ‘개혁’의 날개를 달 것인가?
한편 연정론은 소위 ‘민주개혁세력’의 퇴조 위기에 대한 정면돌파의 정공법이라는 해석도 있다. 그런데 노무현 대통령은 이념의 대립이나 민주세력 대 반민주세력의 대립구도는 더 이상 현실정치에 도움이 안 된다는 태도다. 그렇다면 연정을 통해 재집결하고자 하는 민주개혁세력의 실체는 무엇인가? 현 시점에서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층은 ‘민주개혁세력’인가 아닌가? 한나라당의 지지층도 연정만 성사되면 민주개혁세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인가?
여기서 개혁의 실체가 무엇인지도 혼란스럽다. 한나라당과의 연정이 바로 정치개혁을 위한 것이고, 한나라당과 차별성이 없는 그간의 참여정부 정책이 바로 개혁을 추진한 것이었으며, 그리고 이를 무조건 지지하는 층이 바로 ‘민주개혁세력’이란 말인가? 아니라면 ‘민주개혁세력의 재집결’을 말하기 이전에 그 정체가 무엇인지 밝혀야만 할 것이다. 연정론으로 드러난 개혁포기선언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현 정권의 민주개혁과 그 세력의 집결을 고대하는 지지층에게 노무현 대통령은 그 특유의 솔직함으로 이제라도 ‘민주개혁’의 수사학과 계산법에 대한 자신의 태도를 밝히는 것이 더 확실한 정공법이 아닐까? 아직 시간은 있다.
이영자/가톨릭대 교수·사회학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