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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2 19:01 수정 : 2005.09.12 19:01

유레카

9월11일 하면 먼저 떠오르는 일이 미국에 대한 동시다발 테러 공격이지만, 이 날은 남미 칠레의 민주 정부가 미국이 뒤를 봐준 군부의 손에 무너진 날이기도 하다. 1970년 선거로 당선된 살바도르 아옌데 대통령은 73년 이날 아우구스토 피노체트가 이끄는 군부 쿠데타에 끝까지 저항하다 65살의 삶을 마감했다.

의대를 나온 그는 24살 때 사회당 창당에 참여하고 37년 29살의 나이로 의원에 당선되면서 정계에 들어갔다. 52년부터 여러 차례 대권에 도전했으나 번번이 낙선한 그는 70년 진보진영 후보 단일화에 힘입어 대통령이 됐다. 하지만 그의 앞길은 순탄할 수 없었다. 미국은 대선 때부터 온갖 공작을 폈다. 과반을 얻은 후보가 없어서 의회의 최종 결정을 기다리던 9월15일 미국 중앙정보국장이 쓴 메모는 “가능성은 10분의 1이지만, 칠레를 구하라. 1000만달러가 확보됐고, 필요하면 더 확보할 수 있다. 경제가 비명을 지르게 만들라”라는 내용을 담고 있다. 10월16일 중앙정보국이 칠레 산디아고 지부에 보낸 전문은 “아옌데를 쿠데타로 뒤집는다는 게 확고하고 지속적인 정책이다”라고 썼다. 아옌데 재임 기간에 중앙정보국이 이를 위해 쓴 돈은 800만달러라고 한다.

아옌데가 미국의 희생자로 부각된 탓에 별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그의 문제를 지적하는 이들도 있다. 작가인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는 이렇게 썼다. “운명의 장난은 그로 하여금 낡아빠진 부르주아 법률을 총을 들고 지키게 하는 기묘한 처지에 빠뜨렸습니다. … 그는 자기가 총검을 쓰지 않고 끝장내려고 했던 썩은 체제를 옹호했고, 영혼을 파시즘에 팔아먹은 야당의 자유를 옹호했기 때문에 결국 자신이 총을 들고 싸우는 처지에 빠져버렸던 거죠.” 보수 야당과 손잡지 않으면 개혁이 불가능할 것처럼 목소리 높이는 이들을 보면서, 아옌데의 딜레마가 새삼스럽게 느껴진다.

신기섭 논설위원 marish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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