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12 19:07
수정 : 2005.09.12 1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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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관수 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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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8·31 부동산 대책은 강력하면서도 현실적인 방안으로, 그 효과가 매우 기대된다. 하지만 그 내용 가운데 ‘광역적 재개발’ 방안은 졸속으로 추진되고 있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정부는 소규모 개발사업을 통합해 최소 15만평을 광역지구로 지정한다고 한다. 사업지구의 광역화는 반드시 필요하지만, 기성시가지에서 15만평 이상을 사업지구로 지정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어쩔 수 없이 양호한 주택지까지 사업대상에 포함하는 문제를 일으킬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광역적 재개발에서 중요한 건 개발면적이 아니며, 이런 부작용을 감수하면서까지 굳이 수치에 매달릴 일은 더욱 아니다.
또, 정부 방안은 광역재개발 구역의 사업 추진을 주민의 과반수 동의만 얻으면 할 수 있도록 기준을 낮췄다. 그러나 재개발사업은 주민들의 정주생활과 재산권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기 때문에 주민의 동의가 매우 중요하다. 과반수 주민의 동의만으로 사업을 추진한다는 것은 지극히 행정편의적인 사고다. 현재의 조건인 3분의2 동의가 사업추진을 위한 최소한의 동의수준인 것이다. 주민 동의 조건을 낮춰서 성급히 사업에 착수하면 오히려 주민간의 갈등을 부추겨 사업추진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
광역적 재개발의 필요성은 이미 1980년대 중반부터 제기돼왔다. 2002년 서울시의 뉴타운사업으로 실제 시도도 되었지만 현재까지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채 대상지역이 투기장화해 지역주민의 갈등만 키우고 있는 게 현실이다. 사업의 대상과 범위가 바뀐 만큼 지역개발에 대한 새로운 접근방식이 필요했는데도, 기존의 개발이익 위주의 사업방식을 벗어나지 못한 채 조급하게 성과를 내려고 무리하게 사업을 추진한 탓이다.
광역적 재개발은 인접한 개별단위 사업구역들에 대해 통일성과 유기성을 갖춘 개발계획을 수립하되, 사업의 측면에서는 느슨한 연결 상태를 유지하는 것이 좀더 현실적이다. 공공기관은 도로 등 기반시설과 각 구역별 용적률 등 기본적인 가이드라인만 수립하고, 구체적인 사업내용과 설계는 민간 건설업체들이 제시하게 한 뒤 각 구역별로 주민들이 총회를 열어 결정하도록 하는 게 합리적이다. 광역적 재개발은 많은 조정업무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전문성과 공공성을 지닌 조직이 참여해야 한다. 영국의 도시개발공사 같은 조직을 만드는 것도 고려해 볼 수도 있으나, 재개발과 관련한 많은 경험을 쌓은 공기업을 활용하는 방안이 더 경제적일 수 있다.
광역적 재개발을 하려면 가장 먼저 광역적 계획을 세워야 한다. 재개발사업의 첫단추인 주거환경정비기본계획 수립 때 2개 이상의 정비예정구역이 인접해 있으면 먼저 광역적 정비지역으로 지정해, 구역간 연관성과 상호보완성을 고려한 종합적인 계획을 수립해야 한다. 또, 도시기반시설을 먼저 시공해 재개발사업의 불확실성을 줄이고 개별조합들의 사업을 촉진할 필요가 있다. 기반시설공사는 공공에서 시행하더라도 공사비용은 공공과 조합이 기반시설의 성격에 나눠 부담하면 된다.
눈여겨 볼 것은 이런 방안들을 현행법 아래서 얼마든지 시행할 수 있으며, 일부 내용 개정만으로 더욱 강력하게 작동할 수 있다는 점이다. 특별법 제정은 불필요하게 많은 시간과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킬 뿐이다. 재개발사업의 오랜 숙원 과제인 광역단위 재개발의 실현은 뉴타운 사업 같은 장밋빛 포장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이는 지역개발에 대한 헛된 환상과 투기적 유동자금의 난입 등으로 안정적인 광역적 재개발을 더욱 어렵게 할 것이다. 광역적 재개발의 성공적 실현을 위해 좀더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선택이 요구되는 시점이다.
주관수/대한주택공사 주택도시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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