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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2 19:08 수정 : 2005.09.12 19:08

이종원 일본 릿쿄대학 교수, 국제정치

세상읽기

고이즈미 총리가 이끄는 자민당이 “역사적 압승”을 거두었다. 연립정권이기는 하나 여당이 ‘개헌선’인 3분의 2를 확보한 것은 전후 일본 정치사상 처음있는 일이다.

자민당의 승리라기보다 고이즈미 총리의 승리라 해야 할 것이다. “자민당을 깨부수겠다”는 고이즈미 총리의 절규가 자민당에 대승을 가져오고, 이익집단과의 결별이라는 가장 ‘비자민당적’ 측면을 전면에 내세운 역설적 선거였다. 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무당파 부동표가 대거 자민당에 쏠리면서, 도시지역에서 자민당이 강세를 보인 점이다. 정치의식이 높은 수도권 71선거구에서 자민당은 63대 5로 민주당에 압승했다.

고이즈미 총리의 개인 인기가 부동표 획득에 크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순한 개인적 인기라기보다 ‘개혁’에 대한 요구이자 지지라고 봐야 할 것이다. 우정 민영화에 반대한 거물급 족의원(특정분야를 오랫동안 틀어쥔 의원에 대한 부정적 표현)들을 대량으로 축출하고, 전통적인 자민당 지지기반인 이익집단을 잘라내는 결단을 극적으로 연출한 고이즈미 총리의 ‘행동’이 여론의 열광적 지지를 이끌어 낸 것이다.

그러나 냉정히 생각하면 가장 확실한 개혁은 정권교체를 필요로 한다. 우정민영화에 반대한 의원들을 쫓아냈음에도 불구하고 이익집단의 지지에 기반을 둔 자민당의 낡은 체질은 여전히 존재한다. 우정 민영화 법안의 부결 사태 자체가 고이즈미 총리의 개혁노선이 자민당내에서도 저항을 받는 상황에서 지도력을 발휘하지 못한 결과이기도 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국민의 뿌리깊은 보수적 경향은 ‘여당내의 개혁’을 선호했다. 자신의 선택에 의한 정권교체로 개혁을 추진하기보다는 강력한 카리스마적 지도자를 대망하는 심리구조가 두드러졌다는 점에서 일본 사회의 욕구불만과 불안정의 한 측면이 엿보이기도 한다.

문제는 선거이후 고이즈미 자민당과 여론이 어떤 방향성을 보이는가에 있다. 우정 민영화는 새로운 국회에서 쉽게 통과될 것이다. 그러나 그 이후 고이즈미 자민당이 재정재건, 연금, 의료 등 여타 개혁에 착수할 것인가는 확실하지 않다. 우정개혁 이상으로 큰 기득권 체계에 메스를 가할 준비가 자민당에는 보이지 않으며, 고이즈미 총리도 우정개혁이라는 ‘싱글 이슈’ 이외의 여타 개혁에 대한 관심은 약했다. 자민당을 ‘탈자민당화’할 개혁에 손을 댈 것인가, 아니면 개혁의 부진에 따른 불만 해소를 위해 개헌, 야스쿠니 참배, 교육개혁 등 정치 이데올로기적인 쟁점으로 이행할 것인가. 고이즈미 자민당의 선택에 따라 일본과 동북아시아 정세는 중대한 갈림길을 맞게 된다.

이번 압승으로 개헌 논의는 급물살을 타게 됐다. 지난 8월 공표된 자민당의 개정초안은 평화헌법의 근간인 9조2항(전력 불보유와 교전권 포기)를 폐지하는 대신 ‘자위군’의 창설과 ‘국제사회의 평화와 안전 확보’를 임무로 추가했다. 오는 11월로 예정된 정식 초안 발표를 계기로 어떠한 논의가 전개되는지 주목된다. 헌법개정은 일본 국민이 선택할 주권적 사항이지만, ‘자위’를 넘어선 일본의 군사적 역할 확대는 동아시아 지역 전체의 관심사이기 때문이다.

교착상태에 빠진 북일교섭에는 이번 선거가 돌파구를 제공할 가능성도 있다. 북일관계 정상화는 고이즈미 총리의 일관된 공약의 하나다. 정권기반이 강화되면 외교적 선택의 폭을 넓히는 것이 상례이다. 이번주에 재개되는 6자회담의 진전을 위해서도 고이즈미 외교의 동향이 주목된다.

이종원/일본 릿쿄대 교수·국제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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