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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3 18:00 수정 : 2005.09.13 18:00

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경제전망대

여러번 보았던 장면들이 반복되고 있다. 정부와 세계무역기구(WTO) 사이에 이루어진 쌀 협상 결과를 놓고, 민주노동당은 비준동의안의 상임위 상정부터 막고 나섰다. 농민과 경찰의 충돌이 이어졌다. 정부와 여당은 쌀 재협상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작년 발효된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우 협상 타결에서부터 국회 비준동의까지 1년반 이상 정치·사회적 공방을 계속했다. 이번에도 양상과 귀결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만 비준 반대의 동력은 자유무역협정에 비해 상당히 약화될 것으로 보인다. 자유무역협정은 양자간 협상이어서 극단적인 경우 협상을 깰 수도 있었다. 그러나 2004년의 세계무역기구 쌀 협상은 관세화 유예 연장 조건을 9개 국가와 협상한 것이다. 일본과 대만도 관세화로 전환했으므로, 관세화를 유예하는 협상의 틀과 기준을 마련하는 것은 정말 ‘예외적’인 사안이었다. 설사 전례 없는 재협상을 하더라도, 그 과정과 결과는 전혀 예측할 수 없다. 국회 비준이 늦어져 올해 의무수입 물량이 내년으로 넘어가면 내년에는 가격 하락과 재정 부담이 더 확대되고 누적될 것이다. 쌀 협상의 판이 깨지고 혼란과 비용이 커지면 정치권은 물론 운동권에도 상당한 부담과 압력이 될 것이다. 하여 연말쯤이면 곡절 끝에 문제가 미봉될 듯도 하다.

그런데 지금껏 반복되어온 이런 논란의 구도가 농업의 현실과 미래에 더 이상 도움이 될 것 같지는 않다. 근 20년간 정책당국, 학계, 농민운동은 모두 개방 문제를 중심으로 논란을 벌여왔지만, 농업의 정체와 위기는 계속되고 있다. 개방이 쌀 농업에 진정 치명적이고 막을 수 없는 것이라면, 그러한 논리구조에서 한국 농업의 활로는 도저히 찾을 수 없다. 쌀 시장 개방이 중대한 문제이나, 국제환경은 다층적·복합적이며, 위협과 기회도 중첩되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농산물의 자유로운 교역을 보장하는 제도가 세계적인 차원에서 마련됐고, 농업 부문에는 새로운 경쟁방식이 도입됐다. 국내 농산물 보호 조처는 줄고 농업 무역은 확대되며, 농업도 기업과 같은 경영 단위 사이의 경쟁으로 전환하는 게 중장기적인 추세다. 농산물과 연관된 산업의 융합도 이뤄진다. 농업, 식품공업, 식품유통업, 외식산업 등 다양한 산업이 연관돼 다단계 산업의 연쇄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인구와 농업생산량이 압도적인 중국은 이 과정에서 핵심을 이룬다. 시장화 속에서 북한을 지원하고 재건하는 문제도 중요한 국제문제다.

이런 흐름을 감안해 동북아에는 새로운 대응이 필요하다. 특히 동북아는 식량자급률이 낮고,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준비 정도가 나라마다 크게 다르다. 따라서 안전한 식료를 지속적으로 확보하려면 국내 차원에서 생산·소비 시스템을 정비하는 한편 국가를 넘어선 협력 체계를 꼭 수립해야 한다. 제조업의 기업에 해당하는 농업 경영체는 기업화·협동화·네트워크화를 통해 자생력을 강화하고, 정부는 더 공공적이고 국제적인 차원에서 기능을 조정하고 조직을 재구성해야 한다. 이제는 새로운 의제로 한국 농업의 미래를 개척할 때다.

이일영/한신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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