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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4 19:37 수정 : 2005.09.14 19:37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과

야!한국사회

‘처절한 맹순씨(혹은 진실씨)’를 아내와 함께 보고 있노라면 불편하다. 이혼을 요구하며 나가버린 남편, 옆집에 살고 있는 주책없는 시어머니와 얄미운 시누이, 혼자 사는 술독 오른 고집불통 아버지, 쿨하고 세련되었지만 유부남과 바람을 피우는 여동생, 그리고 두 딸. 이거야 말로 만화 올드독(http://blog.naver.com/hhoro)의 지적대로 ‘불행 종합 선물세트’다. 첫회부터 지금까지 맹순씨가 행복했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던 것 같다. 대충 짐작컨대 이후로도 불행은 물밀듯이 밀려올 것으로 보인다.

아내에게 배달된 종합 선물세트에 대응하는 방법은 ‘맹순씨의 남편’에 대해 함께 분노하는 것이다. (요령 피우면 안된다. 분노를 꾸미면 일이 더 복잡해지기 때문. 진짜 마음으로 분노해야 한다. 다행히 텔레비전은 남편들의 분노도 조절해 주는 법을 알고 있다. 바로 아이들을 불쌍하게 만드는 것!) 그러고 나서 최대한 불쌍한 표정으로 “당신 남편은 바람도 안 피고, 아내의 속마음을 잘 알아주며, 가사노동도 제법 분담하려고 한다”는 뜻을 전하려고 하지만, 그리 쉽지 않다. 현실이 따라주지 않기 때문이다. 불행한 맹순씨(와 진실씨의 오버랩 이미지)는 현실의 아내들에게 ‘나보다 불행하지는 않죠?’라고 이야기하지만, 곧 다가올 추석 노동절의 처지를 돌아보면 어차피 처절하기는 매일반일 것이다.

요즈음, 추석 증후군으로 스트레스 지수가 충만한 아내들의 신경질에 대개의 남편들은 “내가 해 주면 되잖아!”라고 화를 내지만, 솔직히 고백해 보자. 도대체 남편이 뭘 할 수 있는가! 가사노동의 분담이라는 거창한 슬로건을 들고 나오지만, 노력해봐야 일주일에 한두 번이 아니던가. 남편들은 일년 동안 한 모든 설거지에 몇 배쯤을 곱해 자신의 가사노동을 확대하지만, 애석하게도 아내들의 기억력이 더 좋으니 결국 익숙한 결말로 치닫게 된다. 그래 당신을 이해하지만, 남편은 일을 해야지. 회사에도 나가야 되고. 온갖 스트레스에 시달리면서 가족의 부양을 위해 그렇게 살고 있으니까 아내가 좀 참아야 되는 거 아니야? 그렇게 투덜거릴 바에는 차라리 바꾸자고. 내가 집에 들어앉을 테니까. 이런 익숙한 레퍼토리가 튀어나올 쯤 되면 대개 맹순씨들은 대화를 포기해 버린다.

바꾸고 싶었으면 처음부터 바꿔야했다. 맹순씨를 처절하게 혹은 구질하게 만든 것은 바로 나이며 당신이다. 그런데 우리는 이미 처절해진 맹순씨를 보며 구박한다. “난 니가 지겨워. 싫어!”. 어쩌란 말이냐. 기득권은 모조리 쥐고 있으면서 상대방을 코너로 몰아가면 반칙이다. 이런 세태를 일찌감치 깨달은 여성들이 결혼도 안하고, 애도 낳지 않고, 심지어 해마다 35만명이 낙태를 하고 있지 않는가! 얼마 전부터 정부는 이대로 가면 국가의 존립이 위태하다며 세계 최저 출산율을 경고하고 나섰다. 경고해 봐야 달라지는 것은 없다. 이미 수많은 여성들은 처절한 맹순씨의 처지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남성중심 사회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다. 기득권을 살포시 포기하면 가벼워진 어깨만큼 새로운 내일이 보인다. 불행에 불행이 점철된 맹순씨를 보여주며 ‘당신의 작은 불행은 별거 아니에요’라고 이야기하고 싶겠지만, 현실의 맹순씨들은 이제 꽤 영리해졌다. 우리 아버지 병들어 뒷산의 약초 뿌리 다 캐먹고 돈벌러 서울로 올라온 누이들의 순박을 기대하고 싶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박인하/청강문화대 교수·만화창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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