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14 21:37
수정 : 2005.09.14 2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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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 기획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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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세화칼럼
최근에 한국노동연구원이 펴낸 <노동리뷰> 9월호는 “우리나라의 조세 부담률과 국민 부담률 수준에 대한 연구”에서 한국의 국민 부담률이 미국(25.4%)과 맞먹는 25.5%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중 최하위라고 밝혔다. 이는 사민주의 나라로 꼽히는 스웨덴(50.8%), 덴마크(49%)의 절반 수준이다.
국민 부담률이란 조세총액과 사회보장성 기여금(건강보험, 고용보험, 국민연금 등)을 합한 국민 부담액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을 말한다. 다시 말해, 그들 사회에선 구성원들이 건강·교육·주택·연금 등 공공성과 사회안전망을 위해 소득 중 절반을 사회에 내놓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 양극화로 사회 구성원들 사이 소득편차가 더욱 심해지고, 간접세의 비율이 높은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한국은 소득·분배·재분배 모든 면에서 ‘가진자’들의 천국이라 할 만하다.
그럼에도 조·중·동과 한나라당은 여전히 국제수준 미달인 보유세, 양도세의 인상에도 ‘세금 폭탄’을 말한다. 참여정부의 재정경제부도 그런 시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그들은 우리나라 1인당 국민 부담액이 지난해 398만원이며 최근 4년 동안 37.2% 늘었다고 발표했다. 유럽과 견주는 어리석은(!) 짓은 물론 하지 않는다. 사회 구성원들은 “1년에 398만원이나?”, “4년 간 37.2%나 늘었다고?” 하며 수구세력의 세금 폭탄론에 동조한다.
가령 유럽에서 선거를 통해 좌파에서 우파로, 또는 우파에서 좌파로 집권당이 바뀔 때 국민 부담률은 1~2% 정도 오르거나 내리는 차이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유럽의 우파들도 한국에선 좌파의 좌파다. 한국이 유럽 수준의 부담률을 가지려면 ‘세금 폭탄’이 아니라 ‘세금 핵폭탄’ 한두 개 정도로도 불가능하며, 거꾸로 유럽 사회가 한국 수준이 되려면 신자유주의 핵폭탄이 열 이라도 모자랄 것이다. 이 점에서 한국의 정치·경제·언론·학문의 분야에서 기득권 세력과 그들을 대변하는 경비견들이 미국을 본보기로 강조하는 이유는 노골적으로 당연하다. 그들의 눈엔 카트리나로 확연히 드러난 미국 사회의 계층간, 인종간의 격심한 격차는 보이지 않겠지만.
한국의 기득권 세력이 자신을 미국의 백인 상층과 동일시하는 것은 그들의 자유지만, 문제는 공공성이 실종되고 사회 안정망이 허술한 한국사회에서 신자유주의의 광풍 아래 소득 불균형이 더욱 심화되면서 ‘늠름한 민중’의 터전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생존 불안에 허덕이는 서민은 자식에게 “너는 나처럼 살면 안 돼!”라고 한숨처럼 토해낸다. 위정자들은 서민정책을 편다는 입바른 말을 하기 전에 이 말을 곱씹어보기 바란다. 다수 사회 구성원인 서민들이 자신의 삶에 긍지를 갖지 못하고 자식에게 ‘나처럼 살지 않기를’ 바라는 슬픈 현실에 대해서 말이다.
딸은 고등학교 1학년 때 스스로 사민주의자라고 했다. 아들은 중학교 4학년(한국의 중3 해당) 때 스스로 사회주의자라면서 누나를 개량주의자라고 불렀다. 십여 년 전 파리 교외의 작은 임대 아파트에서 가졌던 가족간 토론 한토막이 아직도 살갑게 다가온다. 아이들도 당시를 회상하면 조금은 쑥스러워하지만 침전 없는 웃음을 짓는데, 어른이 된 지금도 청소년 시절에 갖게 된 이념적 지향성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념적 지향성 이전에 ‘늠름한 민중’의 가능성이다. 뜬금없는 얘기를 꺼낸 이유도 ‘늠름한 민중’의 삶이 가능한 사회환경에 대한 상념이 뇌리를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홍세화 기획위원
hong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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