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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환 전북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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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대법원장 후보자에 대한 국회 동의절차가 끝남으로써 정식으로 이용훈 대법원 체제가 들어서게 되었다.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 인사청문회까지 거친 새 대법원장은 그 어느 때보다 강한 민주적 정당성을 확보하게 되었다. 이용훈 대법원장에게 주어진 과제는 크게 보아 두 가지이다. 하나는 사법부의 과거청산이고, 다른 하나는 사법부의 미래지향적 개혁이다. 우리나라 사법부의 과거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짙게 깔려 있다. 진보당 사건, 인혁당 사건, 간첩조작 사건과 공안사건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사건들이 사법부의 역사를 더럽혀 왔다. 국정원과 국방부를 비롯한 권력기관들이 과거사 청산작업을 진행하고 있는데도, 사법부는 자신의 과거사에 대해 애써 눈을 감고 있다. 수사과정에서 반인륜적인 고문을 당한 피고인들의 호소에도 아랑곳없이 법관들은 모르쇠식 재판을 해댔다. 국가보안법에 대한 수구적 해석을 통해서 대법원은 냉전논리의 파수대 역할을 자임했다. 정권 맞춤형 판결문을 통해 수많은 민족민주인사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다. 인권의 보루가 되어야 할 사법부가 도리어 재판권을 수단으로 국민의 생명을 빼앗는 사법살인을 자행한 것이다. 사법피해자들은 이제라도 사법부가 국민을 위한 사법부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과거의 확정판결에 대한 재심을 신청하고 있다. 그러나 대법원은 형사소송법이 규정하는 재심사유를 매우 엄격하게 해석하면서 재심을 거부하고 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해결해야 할 첫번째 과제는 바로 사법부의 과거사에 대한 자기고백이다. 정권에 기생하여 인권을 유린하고 자신의 영달에 몰두해 왔던 법관들을 솎아내는 작업이 병행되어야 한다. 이용훈 대법원 체제는 사법부가 미래를 향하여 어떻게 달라질 것인지, 개혁의 청사진을 국민 앞에 밝혀야 한다. 사법부 개혁의 핵심은 법관 인사제도의 혁파이다. 사법부는 사법부 개혁을 부르짖던 법관들을 조직적으로 도태시키고, 체제순응형 법관들을 요직에 등용하는 인사관행을 유지해왔다. 사법부 인사제도의 문제점을 결정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대법관 임명이다. 대법원의 임무는 단순히 법조문을 문리적으로 해석하는 데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국민의 다양한 가치관과 이해관계를 합리적으로 조정하는 데도 미친다. 이 때문에 대법관들은 다양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로 충원되어야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대법관들은 철저하게 보수성향을 가진 사람들만으로 채워져왔다. 대법원의 판결이 국민 모든 계층의 이익을 조화롭게 고려하지 못하고 일부 계층, 특히 보수계층의 이익과 가치관의 옹호에 치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새 대법원장이 대법관 임명제청권을 자신의 전속적 권한이 아니라 국민과 함께 하는 권한으로 이해할 때라야 그 권한을 어떻게 행사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 나오게 되어 있다. 이용훈 대법원 체제는 법관의 위상을 정확히 세워주어야 한다. 법관은 각각 하나의 헌법기관으로서 지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재판의 실제에서 부장판사는 독립성을 확보하지만 배석판사는 독립성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 공지의 비밀로 되어 있다. 법관 계급제도가 과연 필요한 것인지, 그것이 헌법정신에 합치하는 것인지에 대한 면밀한 연구와 검토가 이루어져야 한다. 이용훈 신임 대법원장이 사법부 개혁의 적임자인지에 대해 의구심을 갖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그가 20 대 80의 양극화 사회에서 80쪽에, 진보와 보수의 대립구도에서 진보 쪽에 과연 어느 정도로 진지한 법적 관심을 보여 주는가를 국민은 주시할 것이다.김승환/전북대 교수·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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