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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15 18:22 수정 : 2005.09.15 18:22

홍경준 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

세상읽기

20세기 초반 동남아시아에서 발생했던 농민반란의 배경을 연구한 제임스 스콧은 책의 첫 머리에서 농민의 처지를 물 속에서 물이 턱까지 찬 상태로 서 있기 때문에 물결이 조금만 일어도 익사하게 되는 상태로 묘사한다. 물이 턱까지 찬 상태는 대단히 위험하지만, 그 상태가 바로 농민들을 반란으로 몰지는 않는다. 그보다는 물이 턱까지 찬 상태에서 발생하는 미세한 잔물결이 농민들을 반란으로 내몬다는 것이다. 이는 반란이 착취나 불공평이라는 선험적 개념보다는 그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나 관념과 더 밀접하게 관련됨을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만일 당신이 물에 빠진 농민을 도울 수 있는 위치에 있다면 무슨 일을 하겠는가? 턱까지 찬 물을 빼는 일을 해야 하는가, 아니면 잔물결이 일지 않도록 해야 하는가. 이 난처한 상황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턱까지 찬 물을 빼는 일을 해야 할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1987년은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단순하게 생각하면 1987년이 경계지우는 것은 6월 항쟁과 그를 통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다. 전문가들의 평가를 옮기는 것이라 다소 왜곡이 있을 수도 있지만, 헌정체제로서 87년 체제는 틀림없는 진보였으나 불완전성, 봉합, 지체로 표현되는 한계를 가지는 듯하다. 권위주의 체제를 무너뜨린 시민사회가 헌정질서의 재편과정에서 배제된 불완전한 체제, 기성 정치권의 합종연횡으로 인해 문제들이 해결되기보다는 봉합되어버린 체제, 대외적 환경의 급격한 변화에 대한 대응의 지체로 인해 희망의 가능성이 점차 사라지는 체제, 그럼으로써 물은 이미 턱까지 차올라온 상태가 바로 헌정체제로서의 87년 체제가 가진 한계 아니냐는 것이다.

하지만 이 한계는 헌정체제의 영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충격이 가해진 시점과 그 충격의 결과로서 변화가 발생하는 시점 사이에는 상당한 시간적 간격이 존재하기 때문에 87년 체제는 우리 사회의 전 영역에 걸쳐 있다. 사실 그 한계는 우리네 삶의 일상적인 영역에까지도 선명한 자국을 남기고 있지 않은가. 매일 매일의 생계를 힘들게 하는 어려움들, 가령 소득 불균형의 심화와 정규직 일자리의 감소, 고용 없는 성장과 빈곤의 확대는 불완전성, 봉합, 지체라는 87년 체제의 한계와 관련되어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의 우리에겐 87년 체제를 극복하는 일이 대단히 절실하고 시급하다. 그것은 턱까지 찬 물을 빼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 관점에서 87년 체제의 한계를 만들고 유지해온 핵심적 사안인 지역 구도의 문제를 들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으로 연정론을 제기하는 대통령의 행동은 당연하고도 옳게 보인다. 하지만 물이 턱까지 차오른 상태라면 그 일과 더불어 잔물결이 일지 않게 하는 일도 해야 한다. 턱까지 차오른 물보다는 미세한 잔물결에 더 치를 떠는 인식이나 관념이 잘못된 문화에 빠진 결과일수도 있다.

하지만 물이 턱까지 차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겐 미세한 잔물결이 더 치명적일 수 있다. 더 나아가 잔물결이 일지 않아야 턱까지 차오른 물을 빼도록 도울 수 있지 않겠는가. 물론 노 대통령은 잔물결이 일지 않게 하는 일도 열심히 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국정에 대한 역할 분담이 자연스럽게 관례화되지 않는 한, 그것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구체제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난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지 않는 한, 우리들에겐 여전히 미흡하고 불만스러울 뿐이다. 턱까지 차오른 물을 빼자고 제안하려면 좀 더 잔물결을 치우는 일에 몰두하는 모습을 보여야 하지 않을까?

홍경준/성균관대 교수·사회복지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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