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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명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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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한국사회는 지금 모든 집합적 열정과 지혜를 동원해 풀어야 할 ‘삶의 평화화’라는 중대과제에 직면해 있다. 2005년 9월 베이징 6자 회담의 합의는 한반도 문제를 한국의 주도적 역할과 호혜적 양보를 통해 국제적·동북아적 수준에서, 평화적·다자적으로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첫 쾌거로 기록될 것이다. 지난한 합의를 이룬 지금, 이 ‘잠정 타협’을 어떻게 ‘돌이킬 수 없는 최종 평화상태’로 굳혀갈 것인가? 우리의 예지가 더욱 빛나야 할 시점은 평화합의를 실제의 평화이행과 정착으로 연결해야 할 지금부터이다. 첫째는 다자주의의 지속이다. 6자 회담의 최대 성공요인은 누구도 일방적 의지와 정책을 갖고 전체 판을 파탄시킬 수 없는 다자적 길항구도의 유지였다. 1953년 정전협정 이래 남북과 북-미의 여러 합의들은, 파기가 비교적 쉬운 양자 합의였다. 따라서 다자성의 유지는 북핵 해결이 한반도 평화체제 구축으로 연결되는 핵심요건이 된다. 둘째로 한국 주도성의 견지이다. 중대제안을 포함한 한국의 주도성은 위기국면 곳곳에서 결정적인 돌파의 계기였다. 한국은 한반도 평화의 직접 최대 당사자이다. 따라서 향후 국면에서 한국이 주도성을 잃는다면 문제 해결은 요원하다. 특히 항구적인 평화구축을 위한 약간의 경제부담이 있더라도, 이는 전쟁과는 비교할 수 없이 적은 평화·통일 비용이라는 개념으로 접근해 국민적 동의를 구할 필요가 있다. 다자주의·한국 주도 지속을 셋째는 다중성·복합성의 관철이다. 국제평화와 동북아 평화의 핵심요체인 한반도 평화구축은 단일한 협정이나 기구로는 도달할 수 없다. 따라서 한반도 평화체제는 단지 정전체제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넘어 최소한 3중 평화 거버넌스(지배구조)를 갖추어야 한다. 남북이 직접 참여하고 국제사회가 보장하는 한반도 평화협정, 북-미 및 북-일간 상호 주권존중과 국교 정상화, 동북아 다자안보기구 건설이 그것이다. 이런 다중 평화체제를 통해 ‘미국 유일보장’을 고수하는 북한을 설득해 나가야 한다. 넷째로 원칙과 비전, 절차와 방법의 분리이다. 향후 합의이행과 사찰·검증·지원 과정에서 관련국들은 ‘순서’, ‘절차’, ‘방법’을 놓고 비핵화와 평화라는 근본 ‘원칙’과 ‘비전’을 파괴하는 ‘교각살우’의 반평화적 선택을 해서는 안 된다. 평화이행은 평화합의 못지 않게 중요하다. 특히 북-미는 일방의 이익을 위해 순서와 기술의 절차적 문제를 들어 다자 합의를 파괴하려 시도해서는 결코 안 된다. 이번 합의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것은 동북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 그리고 한반도 ‘영구’ 평화체제, 동북아 ‘안보협력’ 증진을 위한 모색에서 각각 항구적, 영구, 안보협력이라는 표현이다. 동북아 항구평화에 대한 비원이 한반도 문제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점은 지난 1876년 이후 한국문제의 국제적 중심성과 비극성을 동시에 드러내준다. 실제로 북핵 문제는 탈냉전시대 동북아 최대의 안보현안이었다. 원칙-절차 분리접근 필요북핵 합의를 토대로 이제 우리는 남북 각각의 내부 민주주의 및 경제발전-한반도 평화-동북아 평화가 하나의 거대한 복합 평화 연환고리로 연쇄 성취되는, 아름다운 쌍방향적 선순환구조를 상념해본다. 북핵 회담이 한반도와 동북아 평화체제에 대한 합의로 연결된 것은 6·15 공동선언과 동북아 구상을 비롯한 우리의 주체적 평화비전과 국제적 조건이 조우·접근하기 시작하였다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6자 회담은 동북아 안보협력 체제와 관련해 베이징 체제 또는 베이징 협약을 만들어내야 한다. 그것은 첫째로, 오늘의 동북아 냉전질서를 정초했던 1951년 샌프란시스코 체제를 극복하는 것이어야 한다. 샌프란시스코 체제의 핵심 특징은 냉전, 동맹, 일방주의, 일본 중시로 요약될 수 있다. 이를 대체할 베이징 체제는 평화, 공동안보, 다자주의, 중-일 균형 및 한반도-일본 균형체제가 되어야 한다. 동북아평화 ‘베이징 체제’ 로 둘째로, 베이징협약은 유럽평화의 기틀을 놓았던 헬싱키 협약을 안고, 또 넘어야 한다. 헬싱키 협약없이 오늘의 유럽평화를 말할 수는 없다. 베이징 협약이 21세기 동북아 영구평화를 위한 반석을 놓지 못한다면 무의미한 것이다. 한반도 평화없이 동북아 평화없고, 동북아 평화없이 한반도 평화건설은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위의 쌍방향 선순환구조야말로 100년 전 안중근이 소망했던 바로 ‘자존’과 ‘선린’을 함께 누리는 동북아와 한반도의 영구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지름길일 것이다. 우리는 지금 100년 평화, 또는 300년 평화를 향한 가슴 설레는 비전을 달성할 중차대한 기로에 서 있다. 노무현 정부와 한국사회가 그런 항구평화의 실제 초석을 놓을 경우, 우리의 성취는 세계사에 매우 크고도 오랜 업적으로 남게 될 것이다. 박명림 (연세대 교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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