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1 19:43
수정 : 2005.09.21 19:44
|
왕후이 칭화대 교수
|
세계의창
지난해 스위스 국회의원이자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위원인 루스-가비 버모-맨골드 박사가 발기한 ‘세계 여성 1000명 2005년 노벨평화상 쟁취 운동’에 나의 몇몇 친구들이 아시아와 중국의 담당자로 참가하면서 내게도 후보자 추천에 참가할 것을 요청해 왔다. 나는 처음에 이 ‘운동’에 회의적이었다.
지난 세기 중국에도 ‘중국인 노벨상 수상’을 기대하는 분위기가 있었다. 1930년대 루쉰이 문학상 후보로 거론됐으나 그는 “중국처럼 뒤떨어진 나라에서 누가 노벨상을 탄다면 중국인의 맹목적인 우쭐거림만 늘 것”이라며 고사했다.
1957년 재미 중국 물리학자 양전위와 리정다오가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함으로써 중국인의 노벨상 역사가 시작됐다. 2000년 프랑스 거주 망명작가 가오싱젠의 노벨문학상 수상 땐 적지 않은 논란이 일었다. 나는 자연과학에 대해선 논할 자격이 없다. 그러나 비서방권 문학에 대해선 할 말이 있다. 비서방권 문학은 서방 언어로 번역된 뒤에야 노벨문학상 심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심사위원의 문학적 취향과 정치적 태도는 말할 것도 없고, 다른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능력 등이 수상자 결정에 영향을 끼칠 수 있다. 이런 조건 아래서 노벨상을 탔느냐 못탔느냐와 중국 문학 수준 사이에 중요한 연관이 있다고는 말하기 어렵다.
노벨평화상은 더 복잡하다. 1901년부터 지금까지 비록 미국의 마르틴 루터 킹 목사, 인도의 테레사 수녀, 남아프리카공화국의 투투 주교와 넬슨 만델라, 김대중 전 대통령 등 존경할 만한 인물들이 이 상을 받았지만, 칠레 쿠데타를 포함해 미국의 제국주의적 음모를 기획하고 집행한 키신저(1973년)나, 야스쿠니 신사를 11번 이상 참배한 사토 에이사쿠 전 일본 총리(1974년)처럼 ‘평화’란 말에 회의가 들게 하는 사례도 적지 않았다. 오히려 적지 않은 위대한 인물들이 노벨평화상과 인연이 없었다. 가장 좋은 예가 간디다. 사정이 이러한데 왜 그 상을 ‘쟁취’하기 위한 ‘운동’을 벌여야 하는가?
‘세계 여성 1000명 2005년 노벨평화상 쟁취 운동’은 노벨상 수상 자체가 목표는 아니다. 이 운동은 세계를 주도해온 특정 국가·지역·피부색·언어 등에서 소외된 수많은 평범한 여성의 자취를 캐내어 이들 사이의 연대와 교류를 추진하려는 것이다. 이 운동의 주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류젠즈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노벨평화상위원회가 노벨상의 신성한 후광을 1000명의 평범한 여성에게 고루 나눠주리라는 사치스런 희망은 없다. 그러나 나는 우리 주위에서 폭력에 맞서 평화를 건설한 사람, 자신의 작은 일을 충실하게 수행해온 우리 주변의 어머니, 교사, 동료와 이웃 한사람 한사람이 세계에 따뜻함과 희망을 보태고 있음을 드러내려는 소박한 바람은 있다.”
이 때문에 나는 이 운동을 지지하고 참여하기로 결정했다. 나는 후보자 추천 과정에서 가난한 벽지와 변두리의 삶 속에서 사회운동과 문화운동에 자신의 생명과 사랑을 모두 바친 평범한 여성들의 이야기를 듣고 읽고 직접 보면서, 이들이야말로 폭력과 불평등과 파괴와 원한이 진동하는 세계 속에서 진실한 평화의 세력임을 깨달았다. 남근중심의 전통이 뿌리 깊은 동북아 지역에서 1000명의 여성 이야기를 이어가는 이 운동을 다이진화는 ‘온유한 도전’이라고 말했다. 이 ‘도전’이 우리로 하여금 평화에 대해 새롭게 사고하도록 도울 수 있다면, 이건 정말 소중하고 필요한 일이다.
왕후이/칭화대 교수·중문학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