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1 21:18
수정 : 2005.09.21 21:18
유레카
1920년대 미국 산골마을을 배경을 한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브래드 피트는 맥주컵에 위스키잔을 빠뜨려 마신다. 부두 노동자를 다룬 <워터프론트>에서는 말런 브랜도가 독주를 털어넣은 뒤 곧바로 맥주를 들이켜는 모습이 비친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네이버 백과사전에서 폭탄주를 찾으면, “제정러시아 때 시베리아로 유형간 벌목 노동자들이 추위를 이기기 위해 보드카를 맥주와 함께 섞어 마신 것이 기원으로 알려져 있다”고 나온다.
한국에선 군인 검사 국회의원 공무원 언론인이 많이 마시는 술처럼 돼 있지만, 폭탄주는 탄광·벌목 ·부두 노동자 사회에서 유래했다는 게 통설이다. 고된 삶에서 잠시나마 벗어나는 데는 싼 값에 빨리 취하는 폭탄주가 제격이었을 법하다. ‘보일러 메이커’라고 부른 데서도 이런 효용이 배어있다.
폭탄주에 관해 인터넷에 올려진 글 중에는 이동윤씨가 쓴 게 눈에 띈다. 그는 폭탄주를 마시는 이유 아홉가지를 들면서 경제적이고 공평하며, 단합된 분위기를 이끈다는 걸 앞쪽에 두고 있다. 반도체 신화를 이끈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은 일본을 이긴 비결이 폭탄주라고 하기도 했다. 퇴근 길에 폭탄주를 마시면서 연구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토해내고 성공과 실패 사례를 얘기하다 보니 팀워크가 살고 연구 성과도 공유하게 됐다고 한다. 농담삼아 한 말이지만 빈말만도 아닌 듯하다.
국회에서 최근 ‘폭소클럽’이 창립됐다. 폭탄주를 소탕하겠단다. 박진 한나라당 의원을 비롯해 여야 의원 43명이나 참여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노동자에서 비롯된 폭탄주가 척결 대상으로까지 된 데는 이른바 힘있다는 일부 계층의 그릇된 행태 탓이 크다. 그런 이들이 소탕하겠다고 ‘이벤트’를 벌이는 게 어쩐지 어쭙잖다. 굳이 권할 거야 없지만, 일과 뒤에 동료들과 가끔 소주폭탄주 한두잔 나누며 박수치는 맛까지 없다면 삭막함이 더해지지 않을지.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