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2 18:34
수정 : 2005.09.22 18:34
유레카
100년. 사람에게 여러모로 뜻깊은 시간이다. 더러 100살을 누리기도 한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에게 100년은 ‘한계 상황’이다. 역사적 인물의 출생이나 죽음 뒤 옹근 100년을 맞아 기념하는 까닭도 같은 맥락이다.
오는 27일, 탄생 100년을 맞는 항일투사가 있다. 이현상. 을사늑약의 해에 선비의 아들로 태어났다. 6·10 만세운동(1926)을 출발점으로 독립운동에 나섰다. 감옥을 들락거리며 일본 제국주의와 싸웠다. 1945년까지 19년 동안 철창에 갇힌 세월이 십이년하고도 여덟달이다. 일제가 항복을 선언했을 때, 그는 지리산에 있었다. 유격전 준비에 한창이었다. 곧장 서울로 와 박헌영과 더불어 조선공산당을 재건했다.
하지만 미군정의 탄압으로 월북했다. 남과 북이 두 나라를 건국하기 직전, 다시 남으로 왔다. 평양에 있었다면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에서 높은 자리에 올랐을 게 틀림없다. 그럼에도 가시밭길을 선택했다. 쿠바를 떠나 볼리비아로 들어간 체 게바라보다 20년 남짓 앞선 결단이었다. 한국전쟁 시기 대다수 인민군이 북으로 퇴각할 때도, 그는 민주지산에서 남하를 결심했다.
‘빨치산 사령관’ 이현상, 호는 ‘화산’이다. 활화산의 정열을 지녔으되 늘 과묵했다. 전설적 빨치산, 이현상에게 53년 8월 평양에서 벌어진 남로당 ‘동지’들의 처형은 어떻게 다가왔을까. 한 달 뒤 9월18일, 지리산 빗점골 너덜지대에서 이현상의 심장은 멈췄다. 주머니에 있던 수첩에서 자작시가 발견되었다.
“바람세찬 지리산에 서니 앞은 일망무제한데/ 칼을 짚고 남쪽천리를 달렸구나/ 내 한시인들 조국을 잊은 적 있었던가/ 가슴엔 필승의 지략 심장엔 끓는 피 있다.”
마흔아홉 살, 삶을 떠나기엔 이른 나이였다. 아무도 기억하지 않지만, 탄생 100돌을 맞아 자문해 본다. 그라면 어떻게 볼까. 오늘의 남과 북을. 그리고 어떻게 살까.
손석춘 논설위원
s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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