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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23 18:20 수정 : 2005.09.24 07:17

김용철 기획위원

[편집국에서] ‘삼성 출신이 한겨레에 와선 안된다’라니…

최근 한겨레신문사 식구가 됐다. 그런데 특수부 검사와 삼성 구조조정본부 법무팀장을 지낸 이력으로 인해 종이신문 여러 장과 전자기록 매체 상당량을 어지럽힌 단초를 제공한 허물이 있어 어쭙잖은 변명이라도 해야 할 책무를 느낀다.

며칠 전 어느 언론인 상가에 조문갔다가 초면인 한겨레 기자 출신 언론인으로부터 면박을 당하고 하마터면 멱살잡이까지 할 뻔했다. 취중임을 기화로 ‘삼성 출신과는 이야기도 하기 싫다. 삼성 출신이 한겨레에 와선 안 된다’ 등이 요지였으니 꽤나 과한 말이었다. 피를 나눈 가장 가까운 친족은 “극우 인사가 왜 극좌 언론에 관여하느냐”고 말한다. 나의 내면적 성향 때문이 아니라 지울 수 없는 경력 때문이리라.

언론은 사람들에게 세상을 보여주는 ‘창’이라고 한다. 그런데 어느 대언론사의 대논객은 보수주의자들의 궐기를 주장하는 상황이다.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는 공산당 선언의 선동 문구가 떠오를 정도다. 나는 사실 언론의 공익적 측면을 고려해 단순히 ‘언론 재벌’과 ‘재벌 언론’을 피해 선택한 것일 뿐 이렇게 물의를 일으킬 것을 예상하지 못했으니 시속에 무지함을 자탄할 뿐이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오히려 이제야 할 일이 뚜렷해진다.

언론에 시시비비를 명명백백하게 가림으로써 결과적으로 사회적 연대와 통합에 기여하는 사명이 있음을 전제한다면, 정치적 태도가 극우 또는 극좌로 단정될 정도로 편향돼서는 안 될 것이다. 다만 비우호적인 분석이나 평가에 대해 급진적이라거나 과격하다고 비난한다면 미국 매카시 의원의 행태와 다를 바 없다. 세상이 음과 양, 남과 여, 가진 자와 못 가진 자, 배운 자와 못 배운 자 등으로 구분된다 하더라도 이들이 조화롭게 동화·통합될 수 있도록 중도를 지향해야만 건강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할 것이다. 중도로 은폐한 양비와 양시의 왜곡만 아니라면 말이다. 많은 선량한 시민이 언론의 분석과 평가를 빨리 보기 위해 새벽잠을 설칠 정도로 언론이 신뢰를 받을 수 있다면 언론 종사자로서는 이보다 더한 기쁨이 있을까. 이것도 내가 한겨레를 선택한 이유다.

누구는 나보고 이쪽저쪽을 기웃거린다고 비난한다. 인천·부산·서울 등지에서 특수부 검사로 정신없이 일하다가 보니 진급할 때가 되었고, 수사 검사라면 몰라도 관리자로서는 자질이 부족함을 깨달았다. 그래서 검사로서는 처음으로 보수 많고 튼실한 기업의 봉급쟁이를 자원했다. 지금 생각해도 참 영악한 처신이었다.

순수한 경영 임원으로 변신하고자 노력했으나 능력과 노력이 못미쳐 결국 원치 않던 사내 변호사를 하게 됐다. 그래도 사건·사고의 수습보다 예방적 자문으로 제구실을 다하고 싶었다. 이에 따라 ‘너무도 인간적인’ 욕심에 대해 부하의 처지에서 건의를 통해 제어하고자 하는 무모한 시도를 꿈꾸었으나 어불성설이었다. 적응력 부족을 실감하고 두번째 사직서를 썼다.

그 뒤 법무법인의 변호사로 1년여 일하며 영업에 약간 눈뜨면서는 오히려 마음속 깊이, 또 온몸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겼다. 그뿐이다.

돌이켜보니 이곳저곳 기웃거리는 사람임에는 틀림없다. 한데 그 점은 언론인으로서는 장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위안하고 있다. 그래서 언론계 입문을 자축하려 하니 법조계·업계·언론계·강호의 선후배 동료들께서는 ‘그냥, 마냥’ 축하해 주시길 바랄 뿐이다.

김용철/기획위원 kyc0327@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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