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6 18:04
수정 : 2005.09.2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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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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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종환칼럼
국내 기업들의 여성고용이 크게 늘고 있지만 주요 대기업의 임원 가운데 여성은 100명에 한 사람 꼴이고 여성 간부사원은 3~4명 꼴에 그친다고 한다. 이달 초에 한겨레신문이 조사한 수치다. 우수 여성인력을 적극 활용해 사회 전체의 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선진국 진입이 어렵다고 한다. 선진국은 국민소득 1만달러에서 2만달러로 높아질 때 여성의 적극적인 노동시장 참여가 이뤄졌다고 한다.
여성인력이 양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회적 추세라면 어떻게 질적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인가는 우리 사회의 과제이다. 우수 여성인력을 찾아내고 도와주고 그들을 리더로 키우는 일에 목적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고위직 승진 심사 때 중요평가 항목 중의 하나인 리더십을 “술자리 자주 하느냐?”는 식으로 질문하고 평가하는 구태의연함도 문제다. 마초적 리더십보다 따뜻한 카리스마가 조직을 훨씬 더 잘 이끈다는 걸 빨리 알아야 한다. 리더십에 대한 남성적 편견도 문제다. 인간과 사회를 지배하고 대립하는 타자로 인식하고 흑백논리와 비타협성과 엄격함과 강제력으로 관철해 나가는 지도력은 정보화 사회에 맞지 않는다. 공격적이고 폭력적이며 세상을 지배하고 정복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서로 협력하고 연대하며 상호부조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리더가 되어야 한다.
여성은 남성들보다 덜 권위적이면서 더 도덕적인 힘을 갖고 있다. 정서적, 정신적인 영향력도 더 크다. 그런 여성적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로 변화해 가야 한다. 부드러운 힘과 합리주의, 대화와 유연한 소통능력, 조화와 존중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여성적 가치가 높게 평가되어야 한다.
그러나 경계하지 않으면 안 될 것도 있다. 행정 분야에서 내가 아는 어떤 여성 간부는 일상 언어와 조직에 대한 사고와 행동 패턴이 남성간부 뺨칠 정도이다. 그런 능력이 없으면 승진하지 못한다는 걸 일찍 체득한 사람이다. 남성 간부들은 그를 화통한 사람이라고 생각할지 몰라도 지금 우리 사회가 여성 리더십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은 여성 고위직의 숫자가 많아야 한다는 당위성 때문만은 아니다. 여성적 가치를 가진 사람들이 사회의 지도층으로 더 많이 확산되면서 그 여성적 가치로 인해 세상이 달라져야 하기 때문이다. 여성적 가치를 버린 채 남성들의 잘못된 행태를 따라하지 않으면 지도자가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면 그것 역시 잘못 가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주류남성이 중심이 되어 이끌어 온 우리 사회는 지배와 억압과 정복과 폭력과 대립과 갈등과 경쟁을 주된 내용으로 해온 사회이다. 양적 팽창과 그것을 단기간에 이루려는 속도주의와 소유와 탐욕이 지배하는 세계이다. 목적한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으며 전쟁도 불사한다.
이런 세상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이런 마초이즘적인 것이 남성적 가치라면 세상은 여성적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남성들이 잘못 이끌어온 세계를 여성적 가치가 존중되는 사회로 바꾸어 놓으면서 권리의 평등, 관계의 평등이 한 사회의 문화가 되어 있는 세상, 생명을 존중하고 서로 아끼고 인격적으로 대하고 바라보며 사랑하는 세상으로 바뀌어야 한다. 폭력과 권력과 억압과 지배가 아니라 부드러운 힘과 평화와 상호부조와 평등이 삶의 일반원칙이 되어 있는 세상을 만들어 나가야 한다. 그 속에서 남성과 여성이 함께 누리는 자유와 행복, 나도 남도 함께 즐겁고 기쁘게 사는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가야 한다.
도종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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