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6 18:13
수정 : 2005.09.26 18:13
|
김갑수 문화평론가
|
세상읽기
함께 일하는 방송팀들과 채석강에 놀러갔던 주말, 경제학자 정운영 선생의 부음을 전해 들었다. 애석함에 앞서 그 느닷없음에 황막한 기분을 떨치기 힘들었다. 깊숙한 만으로 들어앉은 부안 앞바다 물살에 죽음이라는 머지않은 절차가 자꾸만 눈에 얼비쳐 보였다. 하필이면 다음날인 일요일 아침, 벗의 49재 모임이 예정돼 있었던 것이다. 추모시를 부탁받았지만 나는 거절했다. 글을 짓기에는 너무나 친밀한 사이였다. 지난 8월 1일, 주위 사람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병원에 들어가 조용히 떠나버린 그 몹쓸 녀석은 정치학자 전인권이다.
방송국 로비에서 악수나 나눈 정도일 뿐, 고 정운영 선생과 이렇다할 교분이 있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이는 내가 사회적 존재로서 각별히 좋아한 몇몇 중 한분이었다. 가는 데마다 마다 ‘쫓겨나는’ 낭인의 삶에서, 특히 그이를 두고 빈정거리는 표현인 ‘와인에 심취한 마르크시스트’라는 별명 때문에 애착의 강도가 더했다. 한국사회에서 와인은 안락한 중상류층을, 마르크시스트는 궁핍한 자를 위해 자기를 헌신하는 사람을 뜻하는 기표다. 존재의 모순과 다층성이 용허되지 않는 우리 사회. 그이는 이 한국이 몸에 맞지 않은 지적 에트랑제(이방인)였다.
방송 진행자 경력 탓에 목욕탕에서도 사람들이 알아본다는 정운영이지만, 두 달 앞서 떠난 전인권은 무언가를 펼치려는 목전에서 스러져 버렸다. 전인권이가 친구라고 하면 대부분 아, 가수를 잘 아시는군요, 하고 신기해하는 정도다. 하지만 아니다. 독서가에서 그는 이미 유명인이다. 우리사회에서 남성성이 어떻게 배태되는지를 논증한 <남자의 탄생>의 저자가 전인권이고, 올해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 전시될 ‘한국의 아름다운 책 100권’에도 선정된 <아름다운 사람 이중섭>을 쓴 정식 미술평론가가 전인권이다. 아니 더 눈 밝은 사람이라면, 지난 1997년 김대중에 대한 호불호를 떠나 그의 효용성을 활용하자는 취지의 정치평론서 <김대중을 계산하자>의 저자로 그를 기억할 것이다.
정치평론서, 미술평전, 사회심리학서, 게다가 포항제철 연구와 박정희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하고, ‘눈물나는 러브스토리를 배경으로’ 오스트리아 빈 대학에 유학 가야만 했던 이 산만하고 호방한 정치학자 전인권의 실제 직업은 자유인이었다. 성균관대와 서울대로 이어진 그의 학연에서 소위 운동권 언저리치고 그와 친하지 않은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며, 그가 입에 달고 살았던 ‘XX놈’ 하는 욕 세례를 받지 않은 자도 드물 것이다. 그는 온갖 다툼의 현장에서 그 껄껄대는 웃음으로 갈등을 무화시키는 역할을 하는 대신 속으로 암덩이를 키웠다. 49재를 치르며 묘 앞에서 울던 벗들은 전인권을 욕했다. “야, 이놈아, 나만 너랑 특별한 사이인줄 알았는데 그런 인간이 왜 이리도 많으냐!”
이 두 편의 죽음을 차라리 문학으로 받아들여 버릴까. 아니 드라마나 혹은 역사로서. 삶의 폭이 넓었던 인물들이니만큼 이들의 한 치 옆만 들추면 정당을 갈라 피터지게 싸우는 정치권도, 파쟁의 골을 메우지 못하는 예술계도, 학계도, 아니 등 돌린 이웃들도 다 한 두름으로 엮인다. 다만 이 두 망인의 독자성이라면 어떠한 진영에도 끝끝내 함몰되지 않은 자유인의 삶을 살다 갔다는 점이다. 그리하여 스치는 아련한 상념. 흡사 예외적 존재처럼 보이는 이들 자유인이 다수파가 되는 세상이 우리에게도 올까. 머리는 지적 허무주의에, 몸은 흘러간 교조주의의 명령에 따라 작동되는 대한민국 지식인 군상에게 정운영, 전인권식 리노베이션은 어떨까.
김갑수/문화평론가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