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7 17:34
수정 : 2005.09.27 17: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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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한용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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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햇발
올해 초에 이해찬 국무총리와 문희상 열린우리당 의장은 개헌 논의를 내년 지방선거 이후에 해야 한다고 말했다. 큰 선거가 없으니 노무현 대통령 임기 중에 정부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는 유일한 해라는 말도 했다. 이런 일정은 다른 사람이 아닌 노 대통령이 깼다.
7월 초부터 제기된 연정론은 개헌 논의나 다름이 없었다. 다른 현안을 모두 집어삼켰다. 연정론이 대연정론으로 발전하자 열린우리당 의원들의 상당수는 속으로는 반대하면서도 겉으로는 찬성하는 척하는 억지 춘향 노릇을 했다. 지지층이 이탈했고 당 지지도는 한나라당의 절반인 15% 수준으로 추락했다. 노 대통령의 지지도도 29%에서 20% 선으로 떨어졌다. 10·26 재보선은 현재로서는 여당의 완패로 예상된다. 국정에 관해 노 대통령을 보좌하고 있는 정동영·김근태 장관은 ‘당신들은 뭐냐’는 욕을 같이 먹어야 했다.
연정론이 실패한 원인은 간단하다. 민심을 잘못 읽었다. 국민을 가르치려 들었다. 그들은 연정이 뭔지 모르니, 사실 찬성하고 반대하고 할 것이 없었다. 김치찌개만 먹던 사람에게 프랑스 궁중요리가 좋으니 메뉴를 바꾸자고 한 꼴이라는 비유도 있다. 노 대통령은 ‘정치 문화’를 바꿔야 한다고 했다. 아니 도대체 ‘문화’를 어떻게 한꺼번에 바꿀 수 있나. 한 나라의 정치 문화는 역사의 산물이다. 유럽식 연정을 자꾸 얘기하는데, 유럽은 수세기에 걸친 이념 투쟁으로 많은 피를 흘린 뒤 연정이라는 타협점을 찾았다. 우리는 다르다. 연정론의 심리적 배경이 된, “못해먹겠다”는 노 대통령의 생각도 문제가 있다. 과거 독재자들의 ‘통치’ 시절에도 야당은 대통령을 공격했다. 김영삼·김대중 대통령 같은 사람들도 야당 때문에 골머리를 앓았다. 민주주의에서 야당은 언제나 존재한다.
지금 정기국회 국정감사가 벌어지고 있지만, 세간의 관심은 10·26 재보선 이후에 쏠려 있다.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에게 대연정을 제의했다가 ‘딱지’를 맞은 노 대통령이 그냥 넘어갈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여러가지 설이 나돈다. 총리에게 각료 임명권을 넘긴 뒤 2선으로 물러날 것이라는 설이 있고, 임기를 단축해 선거 일정을 조정한다는 설도 있다. 예를 들면 내년 초에 사퇴하고 지방선거와 대통령 선거를 함께 치르게 된다는 것이다. 뒤숭숭하다.
노 대통령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있다. 개헌이나, 선거제도의 급격한 변화를 시도해서는 안 된다. 차기 정권 창출에 끼어들려 해서도 안 된다. 현직 대통령이 관여하면 그 정치적 의도만 부각된다. 개헌이나 선거제도의 변화는 여야 정당이 합의해서 할 일이다. 열린우리당의 차기 대통령 후보는 당원들과 국민이 뽑으면 된다. 역대 대통령들의 실패는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되지도 않을 일을 하면 망하게 되어 있다.
정가에는 열린우리당 몰락 시나리오가 있다. 내년 광역단체장 선거 결과가 ‘12 대 3 대 1’이 된다는 것이다. 시도 16곳에서 12곳은 한나라당, 3곳은 민주당, 1곳은 중부권 신당이 차지하고, 열린우리당은 한 곳도 건지지 못한다는 얘기다. 여당의 궤멸은 여당만의 문제가 아니다. 국정이 마비되고 그 피해를 국민이 고스란히 입을 수 있다. 여당의 대선 예비후보를 자처하는 정동영·김근태 장관은 ‘대통령 안 할 각오’로 그런 국면을 막아야 할 것이다. 대통령을 꿈꾸는 사람은 몸을 사리면 안 된다. 하지만 지금 노 대통령과 두 장관, 여당의 모습을 보면 그런 상황이 안 온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정치는 기술이 아니라 영혼으로 해야 한다. 정공법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성한용/정치부 기자
.shy99@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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