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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27 17:56 수정 : 2005.09.27 17:56

박종현 국회도서관 금융담당 연구관

경제전망대

<톰소여의 모험> 등으로 잘 알려진 마크 트웨인은 미국 개척시대를 대표하는 문명비평가이기도 하다. 미국의 19세기 후반을 지칭하는 사회과학 용어가 된 ‘도금시대’(gilded age)라는 말도 마크 트웨인이 처음 만들었다. 이 용어를 통해 후대의 사람들은 당시 미국이 달성한 화려한 산업화의 이면에 부정과 타락이 도사리고 있다는 것을 되새기게 된다. 그는 문명과 제도가 숨기고 있는 위선에 대해서도 풍자의 칼끝을 겨누었다. 그중에서도 “은행가란 해가 날 때 우산을 빌려주고 비가 내리기 시작하자마자 우산을 빼앗는 작자들”이라는 야유가 인상적이다.

마크 트웨인의 촌철살인은 시공을 뛰어넘어 지금 이곳에서도 유효해 보인다. 그동안 우리나라 은행들은 경기가 살아난다 싶으면 중소기업 대출에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경기가 침체되고 연체율이 높아질 조짐을 보이면 신용과 무관하게 무조건 회수하는 관행을 되풀이하는 등, 산업자금의 든든한 젖줄이라는 본연의 책무를 소홀히 했던 것이 사실이다. 최근에는 확실한 담보가 있는 주택대출에 주력함으로써 집값 폭등에 일조했다는 혐의를 받기도 했다.

이처럼 은행이 제 구실을 못하는 와중에, 마크 트웨인의 비아냥으로부터 자유로운 새로운 ‘은행’들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사회연대은행’과 ‘신나는조합’이 바로 그들이다. 전통적인 기준으로 보자면, 이들은 은행을 참칭하는 ‘짝퉁’에 지나지 않는다. 가장 높은 가치를 수익성에 두지 않으며, 수신기능도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 ‘대안은행’은 은행권이 담당하던 일부 영역, 곧 빈곤층의 창업자금 대출업무를 기꺼이 담당하고 있다는 점에서 훨씬 은행답다. 이들은 담보가 없다는 이유로 은행으로부터 배제된 사람이더라도 굳건한 자활의지만 확인되면 창업에 필요한 최소한의 자금을 제공한다. 놀라운 것은 이들이 전통적인 금융권에 비해 훨씬 우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는 점이다.

은행권의 경우 신용불량자의 대출상환율이 50%에도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반면, 새로운 ‘대안은행’들은 유사한 계층에 대출을 제공하면서도 90%를 훌쩍 뛰어넘는 상환실적을 거두고 있다. 또한 대안은행에서 돈을 빌린 창업자들은 높은 생존율과 사업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이들이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빈곤층들이 가장 필요로 하는 것, 즉 지식과 정보 그리고 네트워크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전문화된 밀착형 경영지원 서비스를 헌신적으로 제공하는 ‘두레일꾼’ 또는 ‘아르엠(RM)’이라고 불리는 전문 후견인들의 활동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물론 ‘대안은행’이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는 ‘경제의 양극화’와 ‘빈곤의 구조화’ 문제의 근본적인 처방이 되기는 어렵다. 이들은 빈곤대책의 ‘틈새시장’에 해당되는 것으로, 혜택을 입는 사람도 당장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이런 실험이 전국적으로 널리 확대되고 지역사회에도 깊이 뿌리내릴 수 있다면, 인적·사회적 자본이 부족해 치열한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에게는 든든한 자활의 터전이 될 수 있을 것이다.

한국사회는 최근 들어 ‘수익성’이라는 기준이 모든 가치를 압도하는 가운데 사람들을 움직이는 힘 또한 돈으로 빠르게 바뀌고 있다. 사회연대은행과 신나는조합의 실험은 이처럼 뒤틀린 ‘시대정신’과는 다른 방식으로도 성공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의미가 각별하다. 이 소중한 실험이 끝까지 성공할 수 있도록, 우리 모두의 관심과 참여가 절실한 시점이다.

박종현/국회도서관 금융담당 연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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