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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28 19:09 수정 : 2005.09.28 19:09

야마무로 신이치 일본 교토대 교수

세계의창

전후 60년을 맞은 올여름, 일본은 총선 소동으로 날을 지샜다. 그 결과 집권 자민당과 공명당이 중의원 의석 3분의 2 이상을 확보했다. 여당은 앞으로 4년 동안 어떤 법안이든 통과시킬 수 있게 됐다. 또 패배한 민주당의 새 대표는 안전보장정책에서 여당과 가까운 개헌론자다. 헌법개정파가 절대다수를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선거는 21세기 일본 사회의 큰 변화를 뚜렷이 반영했다는 점에서도 주목된다. 먼저 미디어정치 시대가 마침내 본격화했다. 쟁점을 극도로 단순화하고 알기 쉽게 해 방송이나 인터넷을 어떻게 활용하는지가 선거의 귀추를 결정했다. 그것은 정치가를 용모만으로 판단하는 대중 감정의 움직임이 정치를 결정한다는 대중정치 시대가 된 것을 뜻한다. 정책 논의를 호소한 활자매체가 무력해지고, ‘단문 정치가’로 불리는 고이즈미 총리가 절대적 인기를 누리는 것도 사고능력 저하의 반영이다.

다른 중요한 변화의 하나는 지금까지 농촌에 지지기반을 뒀던 자민당이 도시지역에서 압승한 사실이다. 그것은 도시지역 주민이 인구가 적은 농촌 주민들에게 세금을 사용해 도로 등의 인프라를 정비해주거나 우편 등의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데 반대하는 것이다. 세금에 의한 전국적인 부의 재분배가 부정된 것을 의미한다. 이런 농촌지역 내버리기 정책은 앞으로 한층 활발해질 것이다.

유권자의 상당수는 ‘작은 정부’라는 말을 환영했다. 그렇지만 그 의미는 정부가 국민 서비스를 삭감한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런데도 지금 일본에선 ‘개혁’이라는 마법의 말에 반대하는 것은 정치적으로는 패자를 의미한다. 기묘하게도 정리해고에 의해 실직한 사람들이나 경제적 격차의 확대로 꽉 막힌 느낌을 가진 사람들이 이 말에 강한 기대를 걸고 있다. 고이즈미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공식 참배를 지지하고, 한국·중국에 강하게 반발하는 내셔널리즘의 고양을 지지하는 사람들도 이런 부류다.

이런 현상은 두말할 필요 없이 세계화에 부수되는 신자유주의 정책이 침투한 결과다. 1980년대 일본에서는 ‘1억 총중류’(국민 90% 가 중산층)이라는 의식이 있었다. 그러나 개혁을 계속 외치는 사이 소득층 상위 20%와 하위 20%의 소득격차는 급격히 늘어났다. 1990년대 초 약 20배였던 것이 2002년에는 168배를 넘었다. 이렇게 해서 일본 사회에선 ‘이긴 편’과 ‘진 편’의 어느 쪽에 자신이 속하는지가 최대 관심사가 됐다. 자신이 낸 세금을 다른 국민을 위해서 쓰는 데에도 반발이 생겨나고 있다.

이런 일본 사회의 변화는 아마 한국 사회와도 통할 것이다. 시장경쟁 최우선의 신자유주의 정책은 세계화라는 이름의 ‘세계시장의 미국화’와 다름없다. 미국 주도의 세계경제 체제에 적합하지 않으면 국가도 개인도 패자가 될 수밖에 없는 게 현실인 이상, 한국에서도 같은 정책들을 택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일본과 한국은 급속한 저출산·고령화 시대를 맞아 의료·노인수발이나 연금 등을 세대간에 어떻게 부담하고 배분할지, 어떻게 경제 활력을 살리면서 소득분배의 불공평을 시정할지, ‘장기 고도성장’을 내걸고 세계시장에서 확장을 계속하는 이웃 중국의 자원소비와 환경훼손에 어떻게 대응할지 등 공통된 정책과제가 많다. 그런 의미에서 서로 정책기법과 그 효과를 참조할 필요가 있다. 공통의 정책과제에 함께 대응함으로써 말만이 아니라 진정한 의미에서 한·일이 미래지향을 공유하는 길이 열릴 가능성도 적지 않은 것이다.

야마무로 신이치/ 일본 교토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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