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05.09.28 21:44 수정 : 2005.09.28 21:44

조홍섭 편집국 부국장

편집국에서

서울대 문리대 교수를 하다 우리나라의 첫 원자력 행정 부서인 문교부 원자력과장이 된 윤세원 박사는 1957년 11월 경무대(지금의 청와대)로 들어오라는 호출을 받는다. “자네 원자력을 공부했다지?” 이렇게 운을 뗀 이승만 초대 대통령은 대뜸 “우리나라에서도 원자탄을 만들 수 있나?”하고 묻는다. 윤 박사가 ‘당장은 어렵지만 연구를 계속하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대답하자, 이 대통령은 만족한 듯이 ‘정부가 적극 밀어주겠다’고 격려한다.(박익수 지음 〈한국원자력 창업비사〉)

이 일화는 한국의 원자력개발이 초창기부터 핵무기와 무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실제로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핵무기 프로그램을 밀어붙이다 동맹관계를 끊겠다는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의 압력에 굴복한 것은 잘 알려진 일이다. 이후 한국은 상업용 원자력발전소 건설에만 매진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 공개돼 파문을 일으킨 우라늄 농축과 소량의 플루토늄 추출 실험은 국제사회에 ‘과거’를 되살리는 계기가 됐다. 이 사건에 대해 핵전문가인 강정민 박사는 피터 헤이스 등과 함께 〈원자력과학자 회보〉 1·2월호에 실은 논문에서 “한국이 정부의 의도야 어떻든 핵무기 개발과 관련된 연구개발 능력을 키우려는 시도를 계속하고 있음을 보여줬다”고 평가했다.

북핵을 둘러싼 6자 회담에서 북한은 줄곧 핵에너지의 평화적 이용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반응은 차갑다. 그 밑바닥엔 ‘평화적’ 이용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다. 그렇다면 한국과 일본의 평화적 이용엔 문제가 없을까. 핵무기 개발을 공언하고 있는 북한과 한·일의 평화적 핵개발을 맞비교할 수는 없다. 그러나 핵테러 등 잠재적 위험성까지 고려하면 상황은 달라진다.

특히 다량의 플루토늄을 비축하고 있는 일본은 주목할 대상이다. 일본은 90년대 초 상업용으로 필요한 양을 넘어서는 잉여 플루토늄을 갖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현재 당시보다 5배나 많은 4만5천㎏을 비축하고 있다. 오는 12월 시험가동에 들어가는 롯카쇼무라 재처리공장은 해마다 약 8천㎏의 플루토늄을 만들어낸다. 60년 전 나가사키에 떨어진 핵폭탄에는 5㎏의 플루토늄이 들어 있었다. 물론 재처리공장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엄격한 사찰을 받는다. 하지만 최근 이런 보장조처에 허점이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확한 플루토늄 생산량을 공장 스스로도 알지 못하는 불확실성이 존재하며, 그 양은 연간 50㎏에 이른다고 옥스퍼드 연구그룹 프랭크 바나비 박사는 최근 추정했다.

플루토늄은 상업용 원전에서도 연소 부산물로 생긴다. 대형 원전이라면 그 양은 연간 약 200㎏에 달한다. 여기서 나온 순도가 낮은 플루토늄으론 핵무기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 원자력산업계의 오랜 주장이었지만, 만만치 않은 반론에 부닥치고 있다.

무엇보다 최근 핵확산 못지않게 핵테러의 위험성이 관심거리다. 프린스턴대 프랭크 반히펠 교수는 테러리스트가 탈취한 플루토늄으로 폭탄은 몰라도 ‘방사성 무기’는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도시에서 1㎏의 플루토늄을 공기속에 흩뿌리는 테러로 약 1천명의 암사망자가 발생할 수 있다고 그는 계산했다.

사용후 핵연료의 저장수조는 테러공격의 ‘약한 고리’다. 원자로보다 상대적으로 허술한 저장조의 냉각수가 상실되고 화재가 발생한다면 체르노빌사고 때보다 몇배나 많은 방사능이 유출될 수 있다.

1953년 아이젠하워 미국 대통령은 유엔총회에서 ‘평화를 위한 원자’라는 연설을 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 평화적인 핵기술이란 애초에 없다는 사실이 분명해지고 있다.


조홍섭 /편집부국장 ecothink@hani.co.kr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