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8 21:45
수정 : 2005.09.28 21:45
유레카
한민족의 웅혼함을 떨쳤던 고구려는 나-당 연합군의 공격으로 건국 705년 만에 막을 내렸다. 668년 9월의 일이다. 오랜 전란으로 국력이 소모된데다 지도층마저 분열한 고구려가 사면으로 평양성을 포위하고 공격하는 연합군을 이겨내기는 역부족이었다. 같은 나-당 연합군의 무력에 백제도 멸망해 후방세력도 잃어버린 터였다.
외세를 끌어들여 이룩한 삼국 통일은 민족의 활동무대를 축소시킨, 회한을 남긴 역사였다. 한길사에서 나온 〈한국사〉 3권은, 신라의 삼국 통일을 긍정적으로 보는 시각이 주류로 이어져온 것은 신라 계통의 문벌귀족인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무비판적으로 긍정적 의미를 수용한 데 이어 조선 전기까지 역사 인식의 변화를 가져올 만한 사회구조의 변동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다가 유득공이 〈발해고〉 서문에서 〈삼국사기〉에 발해 역사가 빠진 사실을 고려왕조의 취약성과 결부시켜 비판함으로써 삼국 통일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시작됐고, 한국사 공간을 확대시키는 계기가 됐다고 했다. 〈한민족 역대 전쟁사〉도 “한민족사에서 볼 때 삼국 통일기라는 인식보다 ‘남북국 시대’로 이해함이 옳다고 여겨진다”고 했다. 당은 평양 이남 땅을 신라에 귀속시키기로 한 약속을 어기고 고구려와 백제 터를 차지하려 했다. 나아가 신라까지 포함해 한반도 전체가 당의 지배로 넘어갈 뻔했다.
1337년이 지난 올해 9월, 삼성전자의 지원 아래 미국 애플의 엠피3 플레이어 ‘아이팟나노’가 초저가를 앞세워 한국시장에 상륙했다. 엠피3 원가의 절반 가까이 차지하는 플래시 메모리를 삼성전자가 애플한테만 파격적 가격으로 공급한 탓이다. 세계시장으로 뻗어가던 중소·벤처 업체들은 이들의 연합 공세 앞에 고사 위기에 처했다. 나라 운명을 좌우한 일과 한 제품 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일이 같을 수야 없겠지만, 나-당 연합이 그 위에 겹친다.
김병수 논설위원
byungsk@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