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9 17:57
수정 : 2005.09.29 18:01
독자칼럼
언제부턴가 ‘로드 킬’(야생동물 차량사고)이라는 말이 식자들 사이에 유행어가 돼버렸다. 좋은 우리말을 놓아 두고 왜 외국영화 제목 같은 말이 불쑥 튀어나와 자리잡았는지 모르겠지만, 학계나 언론에서 널리 쓰는 말이니 참고 쓸 수밖에.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도 로드 킬에 대한 다큐 프로그램이 방송됐다. 프로그램은 로드 킬의 실태와 원인을 밝힌 뒤 대책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으로 마무리됐다. 국내 최초의 실태조사라 의미도 컸고, 보는 사람에게 많을 걸 느끼게도 했다. 다만 제대로 대안이 제시되지 않아 찜찜한 여운을 남겼다.
고백하건대, 나 역시 언젠가 밤에 국도를 달리다 어떤 야생동물을 친 뒤 달아난 경험이 있다. 그때 얻은 죄책감 때문에 그 뒤 길거리에 나자빠진 동물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못한다. 장갑과 삽이 있을 땐 묻어주고 간다. 하지만 대부분 사람들은 동물을 치어놓고도 “재수없다”며 자리를 벗어나기 바쁜 게 현실이다. 이걸 방증하는 게 아침마다 거리에 널린 처참한 동물의 주검이다.
동물들이 도로에 내려오는 건 따뜻하고 매끈한 노면이 좋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낟알이나 고추를 도로에 말리는 것과 같은 이치다. 사람과 달리 동물들은 도로가 위험하다는 걸 이해하지 못할 뿐이다.
그런데도 우리나라 도로는 생태적인 고려가 거의 없이 지도 위에 그은 선을 따라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또, 지자체마다 관광개발 명목으로 동물들의 필수 이동경로인 강가나 바닷가에 도로를 놓고 있으니, 동물들을 도로 위로 유인하는 꼴이나 다름없다.
유일한 대안으로 생태통로를 말하지만, 우리나라 도로에 있는 생태통로는 동물을 생각한 것인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무성의하게 만들어졌다. 숫자도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생태통로 수를 지금보다 크게 늘리고 크기와 위치도 다양화해야 한다. 또, 조경기법을 도입해 인공시설물 느낌이 들지 않게 해야 한다. 위험 도로에는 아예 야생동물들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치는 방법도 고려해 볼 만하다. 하지만 로드 킬을 줄이려면 무엇보다 우리 모두가 동물들의 처참한 죽음을 그만큼 아파할 줄 알아야 한다.
최종욱/수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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