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9 18:04
수정 : 2005.09.29 18:04
유레카
윈스턴 처칠. 영국의 대표적 보수 정치인이다. 한 신문기자가 처칠에게 물었다. “정치인이 되는 데 가장 바람직한 자질은 무엇인가?” 처칠은 무람없이 답했다. “다음날, 다음주, 다음달, 다음해에 일어날 일을 예언하는 능력이다.” 잠깐 말을 끊은 처칠은 언죽번죽 덧붙였다. “그리고 예언이 맞지 않은 이유를 설명할 능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정치인을 보는 눈길은 일찌감치 곱지 않았다. 고대 그리스의 최대 희극시인 아리스토파네스는 풍자 없이 곧장 정치인을 겨냥했다. “오늘날 정치를 하는 것은 이미 학식 있는 사람이나 성품이 바른 사람은 아니다. 무식한 깡패들에게나 알맞은 직업이 정치다.” 그 ‘오늘날’이 2500년 전임을 떠올리면, 사뭇 아리스토파네스의 희극적 통찰이 놀랍다. 누구보다 한국 정치인들이 생생한 보기 아닐까. 신뢰도가 바닥 없는 심연으로 곤두박질치고 있다. 꼭 국정감사 뒤 술자리 추태 때문은 아니다. ‘정치인’ 하면 적잖은 사람들에게 기름진 얼굴이 떠오른다. 목엔 잔뜩 힘이 실려 있다. 그래서다. 새삼 알베르 카뮈의 말이 귓전을 울린다. “자신 속에 위대함을 지닌 자들은 정치를 하지 않는다.”
과연 그래도 될까. 정치인을 조롱하기는 자유다. 하지만 그들을 조롱만 할 때, 우리의 삶을 바로 그들이 지배하고 있는 현실을 잊기 십상이다. 지난 20여년 한국정치를 가르쳐온 김영명 교수(한림대)는 가장 큰 문제로 정치인의 자질을 꼽는다. ‘국민에 대한 봉사’가 정치인의 본령임을 인식하는 정치인이 없다고 개탄한다. 물론, 처칠처럼 번지르르 말로 하는 ‘봉사’가 아니다. 가슴 깊숙한 곳에서 우러나와야 한다.
봉사란 말뜻 그대로 ‘받들고 섬김’이다. 아테네의 희극시인을 ‘모방’할 생각은 없다. 다만 묻고 싶다. 오늘날 저 숱한 한국정치인 가운데 과연 발견할 수 있을까. 민중을 받들고 섬기는 정치가를.
손석춘 논설위원
song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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