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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09.29 18:14 수정 : 2005.09.29 18:14

김홍배 농협조사연구소 선임조사역 경제학 박사

기고

학교급식에 지역산 우수농산물을 지원하도록 한 ‘전라북도 학교급식 조례’가 이달 초 대법원 판결로 무효화됨에 따라 4년 남짓 지속하여온 학교급식운동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이 판결은 유사한 내용으로 대법원에 제소된 경남, 경기, 서울, 충북 등 조례의 판결은 물론, 국회에 상정된 학교급식법 개정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칠 것으로 보인다. 특히, 통상부문에 미칠 영향은 가늠하기조차 쉽지 않다. 미국, 유럽연합, 일본 등 세계무역기구(WTO) 주요 회원국들이 자국에 대한 세계무역기구협정의 직접 효력을 부인하고 있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는 이 판결에 따라 직접 효력을 인정한 셈이 되었기 때문이다.

학교급식국민운동본부 등 시민사회가 향후 조례소송에서 잘못된 판례를 바로잡으려고 노력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와 함께 통상마찰의 소지가 있는 용어는 자제하고 주어진 여건에서 합리적인 대안을 모색하는 일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된다. 지난 2년 동안 전북 등 5개 지역 조례가 ‘우리 농산물’이라는 용어 때문에 대법원에 발목이 잡혀 있는 사이 우리 농산물의 입지는 더욱 위축되고, 학교급식은 각종 사고로 얼룩져 왔음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통상마찰의 소지를 최소화하면서 실질적으로 학교급식에 우리 농산물을 공급할 수 있는 대안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먼저, 세계무역기구 협정의 핵심인 내국민 대우 원칙(국내외산 차별금지)에 어긋나지 않으려면 관세 및 무역에 관한 협정(가트)의 예외규정을 활용하여 급식재료를 살 때 정부조달 방식을 취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경우 중국 등 정부조달협정 비회원국과는 시비의 소지가 없다. 25개 회원국들도 학교급식만큼은 이미 예외를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 우리 정부에 대해서도 용인할 가능성이 크다. 또 우리가 조달협정에서 예외를 인정받은 농안법, 축산법, 양곡법을 적절히 활용하면 중앙정부에 의한 식재료 조달과 공급도 가능하다. 그래도 우려된다면 조달협정의 효력이 미치지 못하는 기초지자체가 나서면 된다.

농업보조금에 관한 규정을 담은 농업협정의 예외규정도 적극 활용해야 한다. 농업협정은 정부 예산을 생산자에게 직접 대면서 이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면 보조금을 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기 때문에 이 규정을 어기지 않도록 지원방식을 설계하면 학교급식에 대한 보조가 얼마든지 가능하다. 결국 주체와 방법 면에서 볼 때, 기초지자체가 주체가 되어 조달하고 생산자에게 직접 돈을 대는 방법이 통상마찰의 소지를 최소화하면서 학교급식의 질을 높일 수 있는 길인 셈이다.

국회에 상정된 학교급식법 개정안들과 여러 지자체 조례에서 명시하고 있는 ‘학교급식지원센터’는 이런 요건을 충족하는 유효한 대안이 될 수 있다. 즉, 지자체 단위의 지원센터를 매개로 학교, 생산자, 학부모 등 이해관계자들이 합의한 뒤 계약재배를 통해 공동으로 조달·공급하면 국제규범도 준수하고 실질적으로 우리 농산물로 학교급식도 할 수 있다.

이미 학교급식조례가 시행되고 있는 전남 순천·나주 등에서 그 가능성이 확인되고 있다. 생산자단체는 한 학기 급식식단에 따라 농가별로 품목과 파종 시기를 정하여 안정적으로 농산물을 공급하고, 학교는 친환경 농산물을 일반 농산물 가격으로 값싸게 사들여 서로 이익이 되는 모델을 만들어가고 있다. 하루속히 청소년들의 즐거운 점심시간과 웃음 머금은 농민의 모습을 볼 날을 기대해본다.

김홍배/농협조사연구소 선임조사역 경제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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