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02 17:26
수정 : 2005.10.02 1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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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선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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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한국사회
분노는 열정의 또다른 방식이다. 역사와 삶의 주체인 주인으로서 자기확인이나 인간적인 생활의 꿈이 침해받을 때에는 분노하며 또한 분노해야 한다. 그러나 그런 분노의 표출에 대하여 공복의 가면을 쓴 자들은 법의 테두리를 빌려 침묵을 강제하고 있다. 4년 1460일 가운데 오직 단 하루, 투표용지를 손에 쥔 날만 주인의 대우를 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선택한 길이 ‘참여’다. 각종 시민연대를 결성하고 주민투표를 요구하고, 국민소환의 길을 갈구한다.
불행히도 참여정부조차 정당한 분노를 무분별한 폭력이나 무지의 소치로 매도하면서 굴종을 강요하는 행태는 개선되지 않고 있다. 현실적으로 공권력의 부당한 행사로 침탈당한 시민권리가 법적인 절차를 통해 구제받거나 정상화되기를 기대한다는 것은 아직도 요원하다.
방폐장 유치에 관한 주민투표를 거부하자는 민주노동당의 기자회견은 그런 면에서 역설적이다. 부안 핵폐기장 반대투쟁의 교훈만으로는 부족한 것일까.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주도하는 대규모 사업들은 일부 공청회라는 형식적인 요식절차만을 보완한 채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않고 강행되고 있다.
정치적, 자본적 목적을 감추고 잘못 그려진 정책을 실행했을 때 발생하는 피해는 사후복구가 불가능하다. 시민의 힘으로 사후에 소송을 통해 그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소송제기 기간의 제약, 승소에 필요한 매우 엄격한 요건들, 해당 정보의 차단 등의 문제가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그래서 사전에 절차적 정당성을 갖추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이 또한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사가거나 심지어 사망한 사람의 도장까지 위조해 주민동의를 받은 것처럼 서류를 꾸미기도 하고, 반대의 의견이나 불리한 내용은 조사보고서에서 아예 제외시켜 버린 사례도 있다.
탄식이 절로 나온다. 행정처리 과정에서 행정주체가 국민에 대하여 다양한 특별권력을 행사할 수 있게 허용한 이유는 헌법이 명시한 대로 국민의 봉사자임을 믿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권력이 오히려 국민을 억압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부안에서는 작년에 이어 올해에도 부안영화제가 열렸다. 영화제 조직위원회는 군내 유일한 문화시설인 부안예술회관의 사용을 요청했으나, 부안군은 “반핵 성향의 단체가 정부를 비방하고 부안군을 폄훼하는 내용의 행사를 공공시설에서 진행하도록 놔둘 수 없다”며 ‘군수가 필요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사용을 제한할 수 있다’는 예술회관 운영조례를 들어 2년째 사용을 불허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정보를 독점한 채 인력과 재정 면에서의 우월적 지위를 유지하면서 ‘대안 없는 비판’이라는 교묘한 비난으로 시민단체의 구실이나 개인의 노력을 폄하한다. 이 정도 수준이면 참여정부의 참여시대 선언은 정말 말뿐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분노하고 참여해야만 한다.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책무이며, 스스로 삶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유일한 대안이기 때문이다. 요즘은 참여와 연대의 유행시대라고들 한다. 한번쯤 유행의 물결에 동참해보자. 각종 시민단체들이 사전적 감시기능을 제대로 해내길 기대하며 각자 관심있는 분야에 속한 단체에 후원금을 내보자. 선거일을 손꼽아 기다리며, 두고 보자며, 1459일을 침묵하며 기다리지 말고, 1459일 그 수많은 날들, 주인의 위치를 되찾기 위한 작은 몸부림이라도 해야 할 때다.
진선미/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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