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03 17:54
수정 : 2005.10.03 17: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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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응호 태백자활후견기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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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언대
요즘 신문지상에 오르내리는 국민건강보험 관련기사를 보면 갈피를 잡을 수 없다. ‘잘 하고 있다’는 반가움과 ‘이건 아닌데…’ 하는 안타까움이 엇갈린다. 나만의 잘못된 생각일까? 한쪽으로는 보장성을 강화한다고 하면서, 다른 한쪽으로는 국민보건의료를 민간시장에 내맡기려고 하는 정부의 모순된 정책을 보면 필자 같은 비전문가로서는 더욱 헷갈릴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 국민건강보험(공보험)의 보장성은 여전히 낮은 수준이다. 건강보험공단 발표를 보면, 의약품을 제외할 때 56%, 의약품을 포함하더라도 61%에 머물러 있다. 암 같은 중증질환은 엄청난 돈이 들어가는데도 보장률은 겨우 47%에 그친다. 이런 처지에서 정부가 9월1일부터 중증질환의 본인부담률을 20%에서 10%로 줄이기로 한 것은 큰 진전이다. 비록 노무현 대통령의 대선공약이었던 80%에는 못 미치지만, 보건복지부가 오는 2008년까지 보장률을 70%까지 높이겠다고 한 것은 고무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물론 보장률이 100%에 이르는 것이 가장 고무적이다. 유럽의 사례를 보면 꿈같은 얘기만도 아니다. 그러나 보장률을 높이는 데는 그만큼 보험 가입자인 국민의 보험료 부담도 늘려야 한다는 압력이 작용한다. 보장률을 70%로 올리는 데도 벌써부터 보험료 인상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보장성을 높이려는 보험료 인상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 그러나 공보험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차상위계층을 생각하면 보험료 인상은 또다른 의료 소외를 부를 수 있다.
보험료를 올리지 않고 보장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정부가 국고 지원 못지 않게 신경써야 할 부분이 민간보험(사보험)이다. 현재 연간 우리나라 전체 의료비 30조원은 국민건강보험공단 부담금이 19조원, 환자 본인 부담금이 11조원으로 구성돼 있다. 최근 건강보험공단 발표를 보면 사보험에 들어가는 돈이 연간 12조원이라고 하니 이 돈만 공보험으로 흡수하더라도 모든 국민은 돈 한푼 안들이고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사보험 수요를 공보험으로 흡수하는 것은 정책적으로 매우 어렵고 복잡한 과제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공보험의 보장성을 획기적으로 강화하면 그만큼 사보험에 대한 기대가 낮아지고, 가입자의 경제 능력에 따라 보험료를 차등 부과할 수 있는 여지는 커질 것이다. 이건희 삼성 회장과 평범한 봉급쟁이의 보험료에 큰 차이가 나지 않는 부과체계를 개선하려면 그만큼 보장성이 강화돼야 한다.
여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국민보건의료를 책임지려는 정부의 의지다. 그러나 중증질환에 대한 보장성 강화를 빼면 다른 보건의료 정책은 정부가 발을 빼는 쪽으로 나가고 있다. 의료시장 개방,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 같은 조처는 의료 보장성 강화와는 정반대의 정책이다. 정부가 더는 재정부담을 지지 않으면서 국민의 건강권을 시장경제 논리에 떠맡기려 한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미국은 의료시장 개방이나 사보험의 활성화에서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의료기관의 영리법인화 수준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공보험 가입자도 아닌, 그렇다고 사보험 가입자도 아닌 의료 사각지대에 전체 국민의 3분의 1 이상이 방치된 나라가 미국이다. 정부는 강제보험인 국민건강보험 제도가 있기 때문에 미국과는 다르다고 말할 것이다. 하지만 공보험의 보장성이 강화되지 않으면 국민은 여전히 공보험을 두고 주머니돈을 털어 사보험에 가입하지 않을 수 없다. 정부가 절반에 불과한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 강화보다 시장경제 논리에 순응한다면 우리 국민이 갈 곳은 어디겠는가.
원응호/태백자활후견기관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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