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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예랑 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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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처음엔 망가진 최진실을 보는 재미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 한마디로 재미있다. 어차피 드라마라는 것이 얼마나 사람을 감정이입하게 만드느냐는 것이고, 탄탄하게 정리된 인물들의 감정들이 살아있는 바탕 안에 이미 맹순이가 된 최진실을 보고 있자면 절로 같이 웃고 울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젠 거기까지였으면 좋겠다. 배우자의 배신이란 그 어떤 고통보다 큰 상처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부부라는 이름으로 법적 사회적 틀 안에서 단단하게 엮여 있어야 할 가장 밀접한 관계에 다른 이성이 끼어들어 두 사람 사이를 비집고 들어왔다는 충격과, 상대가 나를 두고 다른 이성을 마음에 두었다는 배신감을 무엇으로 치유할 수 있을까? 하지만 그런 감정과 별개로 사랑과 섹스가 그런 ‘법’이라는 개념 안에 묶어 둘 수 있는 것인가는 생각해 봐야 한다. 사랑과 섹스는 말 그대로 개인의 사생활이다. 국가의 공권력으로 개인의 사생활까지 법으로 규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이다. 개인의 성적 자기결정권은 당연한 것이며, 존중되어야 할 것이기도 하다. 물론 법으로 연결된 부부간의 의무와 양심, 도덕적 책임의 중요성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도덕적인 부분을 어겼다고 해서 범죄자를 만드는 것은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사회적인 활동과 지위가 월등할 때의 남자들과 견주어 사회적으로 너무나도 약자인 여성들의 편에서 간통죄는 그동안 큰 힘이 되어 왔다. 하지만 사회가 변하면서 간통죄가 오히려 여성에게 불리한 법이 되고 있다는 것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이다. 앞장서 간통죄의 존속을 주장했던 일부 여성단체들이 언제부턴가 먼저 간통죄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간통죄는 이미 이혼을 담보로 한 것이다. 어쩌면 울고 싶은데 뺨 때려준 꼴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실제로 재산권 행사에서 유리한 남성 쪽이 간통죄 처벌 법규를 교묘하게 악용하는 경우도 많다는 지적들이 있다. 그리고 여성들의 사회적인 활동이 예전과 달리 많아졌고, 여성들도 감정에 비교적 솔직해졌지만, 문제는 사회는 아직 변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간통죄는 남자에게 한번의 망신으로 지나가지만 여성에게는 아직도 주홍글씨가 새겨진다. 얼마 전 간통죄에 휘말린 한 여성 방송인의 사례에서 보다시피, 간통죄라는 것이 쌍방의 책임을 묻기보다 여성의 책임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더구나 지금도 재산에 대한 권리와 양육의 문제가 법적으로 약자인 여성에게 간통죄를 무기로 얼마든지 불리한 일을 야기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간통죄의 불합리성을 빨리 깨닫고 부부공동재산제 같은 좀더 평등한 부부관계를 위한 적극적인 노력이 더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이제 그만 울고불고 하자, 맹순아. 사랑? 그까이거 잊어버리자. 누군가 변했다면 이미 그건 사랑이 아니다. 그런 사랑에 자신의 귀한 시간을 허비해서는 안 될 일이다. 챙길 거 챙기고 이제부터 가장 중요한 스스로를 사랑하면 되는 것이다.간통죄? 그래도 한때 아름다웠던 사람끼리 작정하고 달려들어 악다구니를 쓰며 끝까지 가는 상황이 더 마음 아프다는 생각을 한번만 해본다면 말 그대로 쿨하게 사랑했던 사람이 나를 떠나서도 행복하기를 빌어주는 아량은 불가능한 걸까? 내 정신건강을 위해서 말이다. 더구나 나를 위한 진정한 사랑이 남아 있다는 기대만큼 짜릿한 흥분이 또 있을까? 박예랑/방송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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