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04 18:15
수정 : 2005.10.04 18: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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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자 가톨릭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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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얼마 전 여성노동자들의 ‘최저임금 밥상 차리기’ 시위에서 한 달 급여로 79만원을 받는 한 청소미화원 주부가 한 끼에 944원짜리 밥상을 차려야 하는 현실을 호소했다. 그런데 올해 9월부터 적용되는 최저임금은 시간당 3100원으로, 주 44시간을 기준으로 할 때 70만600원이며, 이는 통계청이 발표한 3인 가구 실태생계비의 29.2%에 불과한 액수다. 이는 여성의 성공신화를 떠벌리는 미디어와 너무나 큰 대조를 이루는 것이다.
한국에서 임금노동을 하는 여성이 1000만명을 넘어섰다. 세계적으로도 ‘고용의 여성화’를 얘기할 만큼 노동시장으로 진입하는 여성들이 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양적 증가는 질적 저하를 대가로 이루어진다는 것에 그 심각성이 있다. 신자유주의 노동시장은 바로 여성 빈곤노동층의 양산을 통해 그 경쟁력을 확대하기 때문이다. 전체 비정규직 노동자 중 여성이 70%를 차지하는 현실은 ‘노동의 유연화’가 여성노동자들을 점점 더 조직적으로 주변부 노동예비군으로 이용한다는 것을 말한다. 지난해 취업여성의 40%는 임시직·일용직이었고 1년 이상 고용되는 상용직은 24%로 나타났는데, 이 수치는 남성의 40%에 비해 확실한 차이를 보이는 것이다.
사회 양극화 현상이 심각하다면 그 핵심에는 ‘빈곤의 여성화’가 두드러진다. 빈곤의 여성화란 빈곤인구의 절대다수가 여성으로 채워지는 현상이며 특히 여성가장 가구가 최저생계비 이하의 빈곤가구가 되는 비율이 점점 증가하는 것을 말한다. 양극화 현상이 심화하면서 양성 간에 빈곤율의 격차가 더 심해지는 것이다. 국민기초생활보장제도의 도입과 사회보험체계의 정착에도 불구하고 빈곤의 여성화 경향은 좀처럼 완화되는 조짐이 발견되지 않는다는 연구결과도 주목된다. 보험과 연금의 혜택이 ‘자격이 있는’ 남성과 ‘자격이 없는’ 여성으로 이분화되는 구조의 복지체계는 여성을 배제하고 차별하는 노동시장의 구조와 맞물려 있으며 이는 빈곤의 여성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특히 40~50대 중장년 여성실업자는 장기실업자가 되면서 빈곤가구로 전락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나타난다. 노동시장으로의 진입 자체가 어려운 것뿐만 아니라 일자리를 얻어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질 수 없는 빈민여성들이 증가하는 것은 바로 사회 양극화 최전선에 여성이 있음을 말한다.
빈곤의 여성화는 사회 양극화의 핵심문제라는 점에서 여성을 넘어서 가족과 국민 모두를 아우르는 일차적 국가과제로 접근해야만 한다. 여성의 열악한 현실을 결코 소수집단의 문제로 취급할 수 없는 것처럼 여성빈곤 역시 한국사회의 불평등을 대변해주는 잣대로 삼아야 한다. 국가경쟁력 강화와 출산율 제고를 위한 도구로서 여성을 생각하기에 앞서 사회적 불평등의 피해와 고통이 극대화되는 삶의 주인공으로서 여성을 생각하는 국가정책을 통해서만 가족해체도 사회해체도 막을 수 있다. 종전의 남성중심적인 접근방식으로는 여성이 항시 남성보다 더 열악한 현실에 처하는 특수성을 고려할 수 없기 때문에 여성빈곤의 문제와 이로 인한 사회양극화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책을 마련할 수가 없다.
빈곤층 700만 시대에서 빈곤의 여성화는 호주제 폐지 이래 더없이 중요한 범여성적 과제이자 범국민적 과제이다. 남성중심적 사회는 여성뿐 아니라 사회의 근간 자체를 위협하게 된다는 점을 우리는 다시 한번 주지해야 하는 시점에 있다.
이영자/가톨릭대 교수·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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