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04 18:17
수정 : 2005.10.04 18: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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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일영 한신대 교수ㆍ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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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전망대
‘대장금’ 태풍이 중국 대륙을 휩쓸고 있다. 드라마 ‘대장금’은 홍콩, 대만을 거쳐 9월초부터는 대륙 전역에 방송되기 시작했다. 지상파와 위성방송 등 채널 수가 많은 중국에서 14%를 넘는 시청률을 기록했다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태풍이 지나가면서 쏟아내는 에피소드도 풍성하다. 주인공 이영애씨를 닮으려는 행렬로 성형외과가 성업이다. 축구 경기 시청을 고집하는 남편 때문에 드라마를 보지 못한 여성이 강물에 뛰어들기도 했다. 한물갔다던 가수 천후이린은 ‘대장금’ 주제곡을 취입하면서 새로운 전성기를 맞았다.
태풍의 발생지를 두고도 여러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유력한 설은 데자뷔(기시감)이다. 중국사회과학원의 옌자오는 “대장금에서 유교의 순수한 형태를 보고 전통의 소속감을 느끼면서 기억을 새롭게 하고 있다”고 했다. 개혁·개방 이후 살아난 가족주의 현상이 지적되기도 한다. 문화혁명으로 중국의 가족제도는 심각하게 파괴되었는데, 가족 사랑이 뜨거운 한국 드라마가 가족으로 회귀하고 싶은 중국인들의 마음을 자극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 ‘대장금’의 주요 소재인 궁중요리 문화와 한방 치료 등이 음식과 건강을 중시하는 중국인들의 취향과 맞아떨어졌다는 해석도 있다.
필자는 한국 드라마가 수입에서 국내생산으로, 그리고 다시 수출이라는 경제구조의 전환을 겪고 있음을 본다. 처음 단계에는 국내에서 소비되는 영화나 드라마를 국내에서 제대로 만들 수 없어서 수입량이 많았다. 이 시기에 성장기를 보냈던 세대는 서구의 배우를 선망하면서 ‘할리우드 키드’로 살았다. 이어서 외화를 국내생산으로 전환하는 수입 대체과정이 추진됐다. 국내 드라마는 장래 이익이 사회적 비용을 넘어서는 유치산업으로 간주되어 일정하게 국가에 의해 보호·육성되었다. 그러는 동안 국내 드라마를 생산하는 데 적합한 노동력, 즉 유능하고 열정적인 시나리오 작가, 제작 스태프, 연기자들이 축적됐다. 이로써 한국 드라마는 비교우위를 갖춰 수출촉진 국면으로 이행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 서울은 경제성장으로 구매력을 갖게 된 중국의 젊은 세대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문화적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산업적·경제적 측면에서 실제로 얻은 이익은 별로 없다. 엠비시프로덕션은 대만의 지티브이(GTV)에 1만달러 정도의 가격에 ‘대장금’의 중국 내 방송 판권을 판매했고, 지티브이는 이를 중국의 위성방송인 후난티브이에 1만2000달러를 받고 재판매했다. 따라서 각 지방방송에 대한 재판매 수익과 광고 수익은 모두 후난티브이가 차지하게 된다. 직접적인 마케팅 경로를 확보하는 것이 우리에게는 이익이 되겠지만, 쉽게 이루어질 수 있는 일은 아니다. 우리는 문화적 다양성을 자유무역에서 예외가 되는 ‘비교역적 요소’로 주장해왔다. 중국도 이익이 침해된다고 판단되면, 우리가 그랬던 것처럼 문화에 대한 국경보호를 시도할 것이 분명하다. 그러니 이익을 얻으려면 문화산업에서도 다른 산업에서처럼 무역 제한을 직접투자 방식으로 돌파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개척자들은 이미 동아시아 차원에서 합작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다.
‘대장금’은 분명 수입대체와 수출촉진이 병존하는 ‘한국형 발전모델’의 성과다. 그리고 이제는 산업 발전에서 정부 역할보다는 국가간 생산네트워크가 더 중요한 국면이 되고 있음을 말해준다.
이일영/한신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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