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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05 21:33 수정 : 2005.10.05 21:33

홍기빈 캐나다 요크대 박사과정·정치경제학

야!한국사회

감기약을 간단히 조제하면 히로뽕과 마찬가지의 환각제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들려온다. 그럼 지금까지 우리는 감기가 걸릴 때마다 환각제에 가까운 물질을 복용하고 ‘약기운’에 취하여 비틀거렸던 것인가. 어쩌다가 이렇게 약기운에 취한 사회가 되었을까.

19세기 이래로 경제 발전이나 식민지화를 통해 급속한 서구화를 겪은 사회에서 사람들의 몸이 어떻게 서양 의학과 의약 산업의 정복 대상으로 ‘식민화’되는지를 보여주는 연구 결과는 많다. 경제 개발로 요동치던 시절, 한국 사회는 인체에 발생하는 모든 문제에는 거기에 꼭 맞는 약물이 존재하여 마치 열쇠와 자물쇠처럼 맞물리게 되어 있다는 생각을 사람들에게 불어넣었다.

염증이나 고통에는 ‘마이신’, 퇴근할 때는 각종 ‘피로회복제’, 퇴근 못 하고 잠을 참으며 일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타이밍’, 원기가 딸리는 노인들은 간호사들이 아예 출장까지 나와 ‘링게루’(링거) 하는 식이었다. 수험생에서 노년층에 이르도록 한 사람도 빠짐없이 ‘하면 된다’를 외치며 무언가를 향해 달려야 했던 그 시절, 우리는 우리의 몸을 하나의 도구나 기계처럼 대상화하여 보는 관점에 익숙하게 되었고, 또 그러한 몸을 각종 약물로 통제되도록 스스로 길들였던 셈이다.

21세기의 오늘날 이러한 ‘개발도상국형’ 약물 남용은 많이 사라지고, 그 대신 몸을 가지가지 욕망의 대상으로 길들이려는 ‘포스트모던’형의 약물 남용이 나타난다. 대마초에서 ‘엑스터시’에 이르는 환각제들, 이름도 들 수 없이 수많은 강정제들, 살 빠지고 피부 고와지고 근육을 키우고 등등의 효과를 낸다는 각종 미용 관련 약물들.

중국 선도(仙道)의 고전들은 신선이 되려면 먼저 ‘솥을 걸어 수은을 찌고 유황을 섞는’ 등의 과정을 거쳐 ‘단약(丹藥)’을 만들어 그것을 복용해야 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물론 여기에서 나오는 솥이니 수은이니 하는 것들은 모두 인체 내부의 유형 무형의 구조와 장기들을 지칭하는 은유와 상징으로서, 오랜 수련과 수양을 통하여 몸과 마음을 모두 환골탈태시켜서 진정한 인간으로서 거듭나는 과정을 일컫는 것이다. 그 ‘단약’이라는 것도 진짜 약물이 아니라 그 수련과 수양 과정에서 나의 존재 내부에서 생겨나는 ‘내단(內丹)’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정통적 견해이다.

그런데 중국의 유한 계급도 바로 이 영생불사의 신선의 존재를 최고의 이상으로 추구하였다. 그렇지만 이들이 온갖 고통을 인내해야 하는 멀고 험한 수련 과정이 달가왔을 리가 없다. 돈과 시간이 남아도는 이들은 그 대신 그 수은이나 유황 같은 물질들을 실제로 솥에서 찌고 볶고 하여 그것을 입으로 복용하는 ‘외단술(外丹術)’에 탐닉하였다. 온갖 중금속을 응축해 놓은 이 흉측한 물건을 먹고 성할 리가 없다. 결국 이 흐름을 선두에서 주도했던 중국 황제들이 줄줄이 피를 토하며 죽게 되었고, 북송(北宋) 때에 이르면 외단술은 거의 사라지게 된다.

멋대로 어처구니없는 욕망을 품어놓고 그저 입에다 약물을 집어넣는 것만으로 그것을 이루고자 하는 우리를 보면, 신선의 진정한 의미는 생각지도 않고 영생불사만 누리겠노라고 중금속을 집어삼키던 자들이 생각난다. 개발도상국 시대는 끝났지만 아직도 우리 몸을 타자로, 대상으로 보고 약물을 부어넣는 얼빠진 행태는 이렇게 면면히 계승된다. ‘약 먹는 사회’에서 빠져나가려면 우리의 몸이 노동의 도구도 욕망의 도구도 아니라는 점을 철저히 새겨야만 한다. 보람 있게 일할 수 있고, 또 이웃과 자연을 진실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는 사회에서 약물 남용은 벌어질 것 같지 않다.

홍기빈/캐나다 요크대 박사과정·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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