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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06 17:54 수정 : 2005.10.06 17:54

이인우 사회부 교육팀장

아침햇발

청계천 평화시장 피복 노동자 전태일(1948~70)이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고 외치며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을 때 서울법대생 조영래(1947-1990)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세상 저 밑바닥에서 들려오는 절규를 들었던 것이다. 초등학교 졸업의 가난한 청년 전태일은 인간의 권리를 일깨우고 높은 분들에게 자신들의 처지를 호소해 줄 대학생 친구를 가져보는 게 소원이었다. 조영래는 그런 전태일의 소박한 바람을 가슴 깊이 간직했고 훗날 늦깎이로 사법고시에 합격한 뒤 인권변호사로 불꽃 같은 삶을 살았다.

복원된 청계천에 전태일의 얼굴상과 함께 다리가 놓였다. 그건 마치 개발 시대에서 복지의 시대로 건너가려는 우리 모두의 노력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생전에 한번도 만난 적이 없는 두 젊은이의 불평등에 대한 자각과 투쟁, 그리고 우정 아닌 우정 이야기를 두 딸에게 들려줄 수 있도록 이 아름다운 다리를 놓은 사람들에게 머리 숙여 감사한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물결 속에서 경쟁 제일주의가 소리높이 외쳐지는 요즘 우리 사회의 아래위를 이어주고 결속하려는 노력은 점점 왜소해지고 있다. 그 결과는 바로 아이들의 메마른 마음에서도 나타난다. 최근 외국에 자녀를 유학시키고 있는 분한테 들은 이야기로는 현지 학생과 다른 나라 유학생들 사이에서 한국 학생들이 따돌림을 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공부 이외의 것에는 거의 가치를 두지 않고 친구도 동료도 그저 경쟁자로 여기는 외로운 점수 사냥꾼, 남의 사정을 이해하고 배려하지 못하는 이기적 동물 등이 한국 아이들의 특징처럼 지적된다고 한다. 사실 내 자식부터 들여다봐도 타인에 대한 배려나 이해심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 이런 문제의 근원은 물론 부모인 우리 자신들이다. 언젠가 놀이공원에 갔을 때 본 광경이다. 한 어머니가 아이를 세워놓고 소리 높여 혼을 내는데, 그 이유가 함께 온 가족 아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차례를 양보했기 때문이었다. 각박한 세상에 현실적인 교육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지만, 이런 교육을 올바른 것인 양 받고 자란 사람들이 만든 사회는 약육강식의 정글과 다름이 없을 것이다.

이런 흐름은 평등과 분배보다는 경쟁과 성장이 우선시되는 요즘 사회 분위기와 관련이 깊지만, 어떤 세상도 소수의 승자들만으로는 이뤄지지 않는다. 우리보다 앞서 자본주의의 길을 걸으며 그 모순을 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그런 자각이 실천으로 이어지고 있다.

며칠 전 <한겨레>는 미국의 명문대 졸업생들이 빈민층 교육에 뛰어들고 있다는 소식을 보도했다. 이들은 ‘미국을 위한 교육’이라는 시민단체가 이끄는 프로그램에 참여해, 초임 교사와 똑같은 월급을 받고 2년 동안 빈민지역 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친다고 한다. <뉴욕타임스>는 “지원자들의 행렬은 교육 불평등이 우리 세대의 시민적 권리와 관련된 문제라는 젊은 대학생들의 신념을 보여준다”는 시민단체 관계자의 말을 전하고 있다.

비록 당장의 시대적 현실감에서 뒤떨어지고 자신의 이해에서 멀리 있다 하더라도 개개인(계층)의 욕망과 공동체의 윤리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는 노력을 우리 지식 사회가 포기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 전태일 다리 위에서 그의 얼굴상을 쓰다듬으며 한 젊은 노동자의 삶과 죽음을 자신의 일로 받아들인 한 지식인의 존재를 떠올리는 이유를 굳이 멀리 미국에서 찾을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인우/사회부 교육취재팀장 .iwlee2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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