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09 17:46
수정 : 2005.10.09 17:46
|
박인하 청강문화산업대 교수·만화창작과
|
야!한국사회
인터넷 포털 사이트마다 뉴스를 모아 서비스하는데, 젊은 누리꾼들은 주로 포털의 뉴스 서비스를 통해 기사를 소비한다.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아마도 돈 문제겠지만) 한국 신문시장을 선점한 대형 신문사들은 네이버 등 대형 포털에 뉴스를 잘 서비스하지 않는다. 이들 신문사도 아는지 모르겠지만, 그 때문에 젊은이들에게 별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고 있다. 좋은 일이다. 강정구 교수에 대한 무차별적인 사상 공세 같은 악의적 기사가 젊은이들에게 다가가지 못하고 있으니 앞으로도 쭉 그랬으면 좋겠다.
그런데, 그런 대형 신문의 기사가 서비스되지 않는다는 좋은 점을 빼면 사실 포털의 뉴스 서비스는 화장발이 너무 세다. 뉴스들은 주로 상업적 논리에 의해 골라지는데, 연예 뉴스가 대표적이다. 예전에 <생방송 음악 캠프>에서 벌어진 한 펑크밴드의 알몸 노출사건 때는 마치 그것 때문에 온 나라의 윤리가 무너진 듯 호들갑이었다. 펑크밴드의 생방송 해프닝 이후 생산되는 기사나 서울 시장의 히스테릭한 반응이나 모두 2005년 대한민국 문화의 현주소를 대변해 주는 안타까운 모습이었다.
그렇게 홍대 앞의 모든 공연장이 ‘남녀 부킹 100% 보장’의 사교클럽인 것처럼 몰아치던 바로 그때, 홍대 인근 지하실의 클럽에서는 밤마다 많은 젊은이들이 묵묵히 기타를 들고, 드럼을 치며, 노래를 불렀다. 나는 전문대학 만화창작과에서 학생들과 함께 만화를 가르치며, 배우고 있다. 4년제 서울 명문대, 4년제 서울 소재 대학, 4년제 수도권 대학 하는 식으로 서열화된 우리나라의 교육 현실에서 전문대학이면 한수 접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우리 학생들에게는 점수로 서열화할 수 없는 열정과 가능성이 있다. 꼬박 2년 동안 대학의 낭만과는 상관없이 쏟아지는 과제에 시달리며 졸업한 뒤에도 그들은 만화에 대한 꿈을 잊지 않고 지하 작업실로 들어가 그곳 습지에서 서식하면서 새로운 밤을 지새운다.
상명대 만화과를 졸업한 만화가 최규석은 자신의 첫 연재작 <습지생태보고서>에서 꿈을 꾸며 내일을 위해 살아가는 자신과 친구들을 ‘습지’에 살고 있는 ‘하위 종’이라 칭한다. 그들은 ‘남루함을 자랑으로 여기지 않지만 딱히 부끄러워하지 않고 어찌 보면 은근히 즐기는 듯한 뻔뻔함’을 지니고 있다. 비가 오면 물이 고이는 작은 반 지하방에 네 명의 친구들이 한 명의 군식구와 함께 기거하면서도 그들은 언젠가 올 그날을 위해 남루한 현실을 (역설적으로) 즐긴다. 자본의 대도시가 주는 현실의 허무함에 좌절하면서도, 꿈틀거리는 욕망에 굴복하면서도, 그들은 간다.
어디 그들뿐이랴. 자신의 앨범을 내기 위해 밤이면 지하철 선로 보수 공사에 나가고, 만화가가 되기 위해 할인점 주차 요원으로 나가고, 자신의 애니메이션 제작비를 벌기 위해 막노동에 나가는 청춘들이 이 땅에 넘쳐난다. 그들은 오늘도 지하 습지에서 자신의 젊음을 불태운다. 지상으로 올라올 날을 꿈꾸지만, 구태여 올라가지 않아도 된다. 노래가 만화가 춤이 영화가 애니메이션이 좋아서 습지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생산하고 부가가치를 만들어내는데 집중하지 않고 자신의 일을 그저 즐기는 이들은 유희적 인간인 ‘호모루덴스(homo ludens)’다. 이들은 즐거움의 힘으로 놀이의 힘으로 내일의 문화를 창조한다. 내일의 주인은 습지인들이다.
박인하/청강문화대 교수·만화창작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