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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09 17:47 수정 : 2005.10.09 17:47

조선희 소설가

세상읽기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흥행성적 800만을 분석한다면, 재미있는 이야기 200만, 감동 100만, 볼거리 100만이라 치고 최소한 절반에 해당하는 400만이 ‘강원도 사투리’의 상품효과라 볼 수 있지 않을까. 강원도 출신인 나는 완벽에 가깝게 재현해낸 그 사투리에 감동했다. 덕분에 강원도 사투리가 요즘 일대 유행이다.

70년대 초반, 주문진의 ‘무장공비 침투’ 사건을 소재로 한 텔레비전 드라마가 방영된 적이 있다. 드라마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거기 나오는 주문진 사람들이 모두 서울말을 쓰는 걸 보고 황당했던 기억은 남아 있다. 99년의 영화 <내 마음의 풍금>은 강원도 산골이 무대인데 주인공 전도연은 서울말을 썼고 마을 사람들은 경상도말 전라도말, 제각각이었다. 대중매체를 장악하고 있는 경상도-전라도, 양대 메이저 방언들 사이에서 강원도 사투리는 마이너의 언어다. 강릉에서 고등학교를 마치고 서울 와서 대학생이 되었을 때 나는 주변에서 짝을 찾을 수 없었던 외롭디 외로운 강원도 사투리를 버리고 재빨리 서울 표준말에 동화되려고 절치부심했었다.

그러다가 영화 <선생 김봉두>에서 배우 성지루가 “나, 소사래요” 할 때 그 ‘강원도적 리얼리티’에 거의 자지러지는 줄 알았고, <웰컴 투 동막골>을 보면서 강원도 방언이 마침내 예술적 경지에 이르렀음에 감동했던 것이다. 두 영화 모두, ‘산산첩첩 시골, 순박한 사람들’이라는 두 가지 전형적인 강원도 이미지에다, 낯설다 못해 이국적이기까지 한 강원도 방언을 버무려놓았다. 여기 나오는 강원도 사람들의 그 천하무적 ‘무대뽀’ 순수는 돈봉투만 밝히는 불량교사를 개과천선시키고 국군과 인민군 사이의 이데올로기 차이도 녹일 정도다. <웰컴 투 동막골>은 심지어 바깥세상에 전쟁이 나도 모르는 유토피아, 무지하고 순박한 강원도식 유토피아를 제조해냈다.

나 개인으로 보자면 사투리 콤플렉스는 있었지만 강원도 출신이라는 게 나쁘지만은 않았다. 고향을 물을 때 ‘강릉’이라고 대답하면 대개들 경계를 풀고 좋아했다. 순박하고 착한 강원도 이미지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이면을 캐보면 유쾌하지만은 않은 정치지도가 튀어나온다. 강원도는 그간의 지독한 지역구도 정치 속에서 단 한번도 독자적으로 정치세력화하려는 야심을 부리지 않았고, 순박하게도 언제나 선선히 ‘1번’을 찍어주었다. 거슬러 올라가면 삼국시대부터 그랬다. 지역균형 발전이라는 말을 많이들 하지만 그것도 우선은, 전통적인 여당의 경상도와 전통적인 야당의 전라도 사이의 균형이며, 신흥 캐스팅보트 당의 충청도가 가세한 정도다. 그러니 누군들 강원도를 미워할 이유가 있나.

최근 부모님 제사 때문에 강릉에 갔다가 사촌들로부터 흥미로운 얘길 들었다. 지난 몇 년 사이 강원도에서 연이어 큰 산불이 났는데 자신들은 대개가 방화일 것으로 본다는 것이었다. 불이 난 뒤 개발제한이 풀리면서 평당 5천원이었던 땅값이 10만원까지 뛴 곳도 있다는 것이다. 정확한 사실인지는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충분히 개연성 있는 이야기임엔 틀림없다. 개발의 시대에 상대적으로 소외된 지역 사람들이 스스로 탈법적인 수단을 동원해 자가발전하고 있다고나 할까.

지금도 강원도에는 산이 많고 순박한 사람들도 많다. 서울 사람들은 휴식을 취하러 강원도에 간다. 힘없는 지역이라는 힘, 홍상수 영화의 제목대로 ‘강원도의 힘’이다.

- 강원도 사투리 쓰는 영화는 다 뜬다매요. 뭐 그렇다고 우리가 싹다 속편한 거 아니래요. 마이 아파요.

조선희/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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